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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방>/상담 노트

[상담노트] "그 해에 내가 너를 두고 가장 많이 기도했단다."



# 멘토의 멘토가 남긴 말

상담자로서의 내 롤모델 중 하나인 조세핀 킴 교수님의 이야기(간증) 중
늘 내 마음에 참 인생 깊게 남아있는 한 부분이 있다.

지금은 많은 학교 상담사들을 양성해내는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님이 되셨지만,
가난한 부모 아래 너무 일찍부터 돈벌이를 하며 힘겹게 살았던 어린 시절,
그리고 이민자로서의 설움과 아픔을 안고 살았던 청소년기,
그녀는 자존감이 정말 낮았고 희망도 삶의 방향성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다가와 눈 맞춰주시고 한 소중한 사람으로 대해주시며
가슴이 깊숙이 참 은인으로 남게 되신 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분의 시선과 도움 덕분에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고,
이후에 하버드대 교수가 되고 난 후,
그 선생님이 가족만큼이나 제일 먼저 생각이 나서
수소문으로 연락처를 알아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꽤 오랜 침묵이 이어지길래 혹시 선생님이 나를 잊어버리셨나.. 했는데..
그때 전화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그리고는 이어진 말.

"정말 네가 조세핀이니...??? Oh, God....
사실 내가 늘 새벽마다 일어나 우리 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는데,
네가 우리 반이었던 그 해에, 내가 많은 아이들 중 '너'를 두고 하나님께 가장 많이 기도했단다."




# 내담자의 삶의 무게 앞에서..

오늘같이 hard한 사례의 아이를 만나고 오는 날은 인간적으로 마음이 무겁다.
내담자의 무거운 인생을 분리하고 떼어놓는 것이
전보다 빨라지고 있고 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내담자의 인생의 무게가 너무나 어마어마할 때에는
동반자인 나의 어깨에도 무게가 아예 실리지 않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십년도 훨씬 넘는 그 긴 세월 동안,
결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고통과 상처를 떠안고 살아온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따뜻한 품이 되어야 할 가정에서 오히려 부모에게
상상이상의 폭력, 폭언으로 학대를 받으며 사는 아이들이 실제로 세상에 있다.
우리 사회에 아동학대가 한창 이슈가 되고 문제가 됐었지만,
신문에서 볼 때는 남의 일 같았는데..
실제로 만나고 보면, 정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너무나 평범한 학생이고
힘없고 순수한 한 소녀일 뿐인데.

상담도 해 줄 수 있고, 지지도 해줄 수 있고,
피해자 심리치료 전문기관을 연계해줄 수도 있고,
또 쉼터를 알아봐줄 수도 있고...

인간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의 상처 자체가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그 기간 동안 어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조세핀 교수님의 멘토가 그러하셨듯이, 기도해주는 거 아닌가..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 한 사람을 살리는 일


(이런 말 하기에 나는 아직 완전 생초보 상담자이긴 하지만)
상담을 계속 하다보면 조금 타성에 젖을 때도 생기고,
때로는 내가 하는 일이 항상,
이미 발생한 일들에 대한 사후개입과 수습을 하는 류의 일인 것 같아서,
근본적인 수도꼭지를 잠글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죄성을 지닌 우리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늘 불완전하게 마련이고,
(=바꾸어 말하면, 세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근본적인 수도꼭지 자체가 완전히 잠기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고.)
그런 세상살이 속에서 깨어지고 찢겨진 사람들은 항상 도처에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그들의 삶을 돕고 치유하는 일도
이 사회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할 역할이겠구나..
그리고 세상이 존재하는 한 먼 미래에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하고 있을 일이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비록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떄때로 오늘 같은 심리적 소진도 생기고,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느끼는 버거움도 있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나는 지금 참 소중하고 귀한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감사와 의미를 또 느끼게 되는..


특히 오늘 더 그런 하루 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