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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방>/상담 노트

[상담 노트] 반짝이는 눈빛을 보는 순간

대학교 때 누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 그거 알아? 너.. 그냥 평소처럼 이야기 하다가도, 네가 뭔가 가슴뛰는 (꿈) 이야기 같은 걸 할 때는 갑자기 눈빛이 변한다? 말도 빨라지고 활력이 돌면서 눈이 막 초롱초롱 빛나. 난 너가 그런 모습일 때 참 좋아보여."라고.

그게 무슨 말인지 그땐 잘 모르고 넘어갔는데, 내가 이 말 뜻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된 것은, 청소년 상담을 하게 되면서였다. 작년에 한 아이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그 아이의 얼굴에서 절망과 어둠 말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러차례 자신을 해치고 죽음을 시도했던 아이이니 어쩌면 그게 더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죽고 싶은데 죽지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아이였으니 말이다. '살아야 할 이유' 단 하나를 찾지 못해 생을 포기하려 했던 그 아이 안에 정말 조그만 희망의 씨앗 하나라도 자라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런데 상담을 진행해나가면서, 정말 잊을 수 없는 한 순간을 경험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이 얼굴에 드리워져있던 그림자가 눈에 띄게 걷히면서 갑자기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하는 모습이 (그리 세심한 편이 아닌 내 눈에까지) 포착된 것이다. 보통 그 순간을, '아하'하고 내담자 안에 어떤 깨달음 또는 통찰이 생기면서 문제를 한단계 뛰어넘게 되는 그런 순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그 시점부터 그 아이가 변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고 나중에는 삶의 안정을 찾아 상담자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잘 살아가게 되었다.

물론 모든 내담자들에게서 그런 변화의 순간을 시각적으로까지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느낌이 내 안에 너무 인상적이고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일까. '상담자가 상담자라는 역할에 가장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이런 순간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었다.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죽은 시체같던 낯빛에 사람같은 생기가 돌게 되는 순간이랄까.) 그 후 대학원을 졸업하기의 몇개월 동안, 여러 상황적인 혼란으로 인해 이 길을 계속 갈지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았지만 그 때 그 잊을 수 없는 경험은 나를 계속 keep going하도록 만들어 준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번 한 아이에게서 그런 눈빛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 친구는 자해, 자살같은 극단적인 증상까지 발전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나름 최근에 굉장히 큰 혼란의 시간을 보냈어야했던 것 같다. 그 길잃은 양같은 모습이 마치 대학교 졸업반 때 (여보 만나기 이전의) 내 모습과 유사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갑자기 그 아이의 얼굴에 한가득 드리워져있던 수심이 걷히면서 편안한 미소로 씨-익 웃고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딴에는 크게 고민했던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정리되었나보다. 들어올때는 풀이 푹 죽어있던 목소리가 나갈때는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바뀌어있다. 그리고 재밌게도 말하는 속도가 많이 빨라졌다. 그 모습이 마냥 사랑스러웠고 나도 덩달아 마음이 포근하고 행복해졌다.

나라는 사람도 연약하고 작은 사람인데.. 내담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똑같은 한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 나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로 도움과 사랑이 흘러가게끔 하실때..! 그 모습을 목격하는 것이 나에겐 큰 즐거움인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이 보고 싶다. 누군가의 얼굴에 다시금 생기가 도는 그런 순간을.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내 얼굴에도 항상 그 사람을 향한 애정과 상담자로서의 생기가 돌 수 있다면 좋겠다.

ps. 그리고 나중에 내 아이들을 키울때는, 자라나는 단계 단계마다.. 우리 애들의 얼굴에서 그런 생기를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