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학교 상담실에 자주 오는 한 아이 중 재혼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있다. 재혼 가정 자녀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아이의 경우 부모님으로 인해 겪어야 했을 일련의 가정사 속에서 혼란과 상처가 상당히 많았던 듯 하다. 새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롭게 이룬 그 가정이 원만하고 행복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시간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재혼을 필사적으로 뜯어말리고 싶다고 말할 만큼 불행했다는 아이. 엄격한 어머니 아래 자라며 사랑받았다는 느낌을 느껴본 적도 없고, 재혼 가정의 새롭고 낯선 친척 관계 속에서 항상 외톨이였나보다.
처음에는 상담이 아닌 다른 일 때문에 상담실에 일주일에 두번 잠깐씩 오가는 아이였다. 해맑고 밝아보이기만 해서 마음 속에 어두운 상처가 그렇게 많은 아이인 줄 몰랐는데, 어쩐지 유독 눈길이 가서 올 때마다 말을 걸었고 그렇게 가까워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선생님은 편해요."라고 이야기 하더니 그래서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점점 쉽게 오픈해갔다.
그리고 어느 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엄마 오리같아요. 왜 영화에 보면 알에서 깨어난 오리가 세상에 나와서 처음 자기를 알아봐준 엄마오리만 졸졸 따라다니잖아요. 선생님이 저를 처음 알아봐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자꾸 따라다니고 싶나봐요.자꾸 와서 죄송해요. 바쁘실텐데.." 가슴이 찡해져왔다. 세상에 태어나 이십여년을 살기까지 정말 단한번도 이 아이에게 '사랑'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 말이다. 고작해야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작은 관심을 보여주고 말을 걸어주고 눈을 마주치고 들어준 것, 같이 웃어준 것, 공감하고 슬퍼해준 것 뿐인데. 작디 작은 것에도 이렇게 쉽게 사랑을 느끼는 이 아이에게 지금껏 한번도 그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니.. 안타까웠다. 그리고 어쩌면 별 것 아닐 수 있는 나라는 한 작은 사람의 관심을 이 친구가 '진심'이라고 느끼고 '사랑'이라고 느끼도록 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마음 속에서 일하셨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눈을 마주친 엄마오리.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날 때 가장 먼저는 자신의 가정에서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하다. 각 가정이 그런 엄마오리의 역할을 잘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에서 깨어나 세상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나왔는데 자신을 바라봐주는, 그리고 먹이를 물고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존재가 단 한 사람도 없다면 그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슬픈 일인가. 물리적인 부모가 있었지만 엄마오리는 없었던 아이들이 많다. 엄마오리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그런 엄마오리 같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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