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은방>/상담 노트

[상담 노트] 자해하는 아이

[상담 노트] 자해하는 아이

마음이 조금 무거운 날이다. 근 2주 간, 자해를 한 청소년들을 네 명이나 만났다. 칼로든 뾰족한 샤프로든 손목을 긋는 것과 같은 행동이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자해 양상이다. 여학생들은 죽을 만큼 깊게 긋는 경우보다는, 혼자만 알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예를 들면, 손목이더라도 옷깃으로 감출 수 있는 정도의 위치에) 핏자국이 남을 정도로만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더 흔한 것 같다.

자해를 하는 아이들의 경우, 보통은 자살을 기도하는 마음과 더불어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오래전부터 품어 온 경우가 많다.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자를 만나러 스스로 제 발로 찾아왔다면, 그것은 그 아이들에게 죽고자 하는 마음만큼이나 사실은 '살고자 하는 작은 소망'도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자해라는 행동 아래에는 '자기 자신을 처벌함으로서 그렇게라도 위안을 얻고자 하는 심리' 가 깔려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 아이가 역기능적인 가족 안에서 자라면서 끊임없이 부모로부터 육체적, 언어적(심리적) 학대를 받아왔다고 한다면. 그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받아온 불합리한 대우에 대한 분노를 계속 쌓게 되지만 자식이라는 입장 상 약자에 위치해 있기에 무조건적인 순종만 요구받을 뿐 부모에게 그 화를 표현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상황의 무기력함이 아이의 낮은 자존감(보통 무가치한 존재라고 자신을 규정하고 있음)과 만나게 되면, 아이는 분노를 역으로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게되고, 자기 자신이라도 처벌을 할 때 차라리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해를 하는 아이들일 수록 남에게 피해주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고 마음이 여리고 유순하며 착하다 싶은 경우들이 많은 듯 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아이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전부터 습관적으로 그런 행동을 해온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아이의 자해 소식을 들어도 그리 놀라지 않는 부모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의 가정일 수록 부모가 아이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하는 대신 수치스러워하며 무조건 덮으려고만 하는 경우들도 많다. 그러면 아이의 근본적인 문제 발생점이라고 볼 수 있는 가정을 건드려주기는 정말 어려워진다. 부모 상담 자체가 불가능해지니 말이다.

지난 주 자해사고 학생에 이어, 오늘도 자해 자살 문제로 인해 한 어머님과 전화를 했다. 그래도 지난주는 아이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 어머님과 통화를 해서 마음이 조금 놓였는데, 오늘은 전화를 끊으면서 한숨이 푹... 나오고 말았다. 아이가 바로 그저깨 밤에 손목을 그었고 현재도 죽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말그대로 응급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학교에 한번이라도 오시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다고 한다. 아이가 죽으려할 만큼 힘들어한다고 하면 적어도 왜 그런지에 대해 궁금해 할 법도 한데, 그저 상당한 방어심과 큰 불쾌감을 대외적인 신사적 말투로 감추고 통화를 종료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아이가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가정을 혐오스럽다고까지 표현했는지.. 단 몇 분의 통화만으로도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었기에 씁쓸했다. 전화를 끊으면서, '이 어머님이 아이를 토닥여주는 건 기대하지도 않으니 적어도 이 통화와 관련해 아이에게 언어폭력을 퍼붓지만이라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염원을 해야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상담자로서 무력함을 느끼기 보다는, 한계는 한계로서 인정하고 '도와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상황을 부모에게 고지해야할 의무는 다했으니, 부모로서의 책임은 이제 그 부모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그 아이를 그토록 죽고 싶게 만드는 환경. 이 환경이 바뀔 수 없다면,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비록 환경이 변하지 않을지라도 그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힘(자생력)'을 길러주는 것일 듯 하다.



ps. 그러고보면 작년에 자해 자살 사고를 반복했던 여고생 H를 상담할 때, 그 아이가 신기할 만큼 눈에 띄게 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어머니의 역할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내담자가 아직 부모의 보호아래 있어야하는 미성년자일 경우,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를 위해 변하고자 하는 겸손한 부모'는 상담에 있어서 굉장히 큰 자원이었다는 것을.. 오늘 새삼 많이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