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에게도 또다른 상담자가 필요하다.
상담하는 사람도 그냥 '한 인간'일 뿐이니까.
조금 더 사람에 관심 많고,
사람에 대한 배움과 경험을 더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
그 역시도 익숙한 자기 틀에 갇혀 있을 때가 많고,
혼자힘만으로는 극복/성장하는 법을 알지 못할 때도 많다는 점에서는
내담자들과 똑같이 그냥,
삶이란 바다 위에 떠있는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특히나 초보상담자일 수록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연륜있는 수퍼바이저 상담자에게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는 게 좋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던 이 원리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시간이 꽤 많이 지체되어 최근에야 개인상담 받기를 시작했다.
상담자임에도 정작,
남을 도와주는 것에만 익숙할 뿐,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에는 익숙하지가 않았나보다.
나에게 찾아오는 내담자에게는
어떤 이야기이든 들어줄 것 같은 포근한 상담자가 되고 싶어하면서 정작,
나의 이야기를 온 마음으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상담자'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쉽게 갖지 못했었었다.
(이게 교만인지,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성향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시작하게 된 정기 개인상담.
선생님과의 만남은 참 신기하다.
사람에게 쉽게 기대를 걸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 눈에
사례발표회장에 갔다가 우연히 처음으로 끌림을 느꼈던 한 분이 계셨는데,
그로부터 몇 달 뒤, '진짜 수퍼바이저'를 만나 개인상담 받고 싶다는 내 말을 듣고
지인상담선생님이 소개해준 분이 바로 그 분이였던 것.
초보상담자로 고군분투하며 좀 지쳐있던 나에게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만남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벌써 오늘로 네 번째 회기가 지났다.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얻고 있다.
위안, 상당한 통찰, 때론 구체적인 조언과 정보까지.
상담시간마다 많은 대화를 나눴고,
훨씬 전문성도 경륜도 많으신 선생님이시기에 다른 배운 것도 많지만,
그 풍성한 대화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서도,
다른 어떤 것보다 나에게 가장 힘이 되고 새로운 통찰이 되었던 말은 의외로,
불안도, 힘든 것도 당연하다는 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는 말,
불안, 힘듦은 분명 평생 감내해야 할 거라는 말.
....이었다.
어쩌면 되게 평범해보이고 문자상으로만 보면 살짝 가혹하게 보일수도 있을 이 말이
세상 어떤 말보다 가장 따뜻하게 들리고,
또 어찌 그토록 내 마음을 때리는 힘이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한 인간으로서의 힘듦, 고통.
이런 것들을 언제부턴가 우리는 비정상적인 것, 제거해버려야만 할 것으로 배운다.
특히나 현대심리학은 그렇게 많이 이야기 해왔고.. 많은 상담 이론들도,
문제점을 발견해 비정상성으로 간주함을 전제하고 그 증상들을 제거하는 데에 급급하다.
(최근 떠오르는 수용전념치료는 좀 다른 접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접근을 익숙하게 배워온 나 역시도,
내 삶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 그리고 상담자로서의 혼란, 고충, 갈등들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모두 '완전히 없어져야만 하는' 비정상적인 것들로 간주하는 프레임을 가지고 살아왔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모두 그래도 나는 그러면 안되는 것처럼,
내 내담자들은 모두 그래도 나만큼은 그러면 안되는 것처럼.
그랬던 나에게,
갈등도, 고뇌도, 불안도,
한 인간인 우리에게는 당연하다고,
(조금씩 줄어들긴 하겠지만) 아마도 '평생' 감내해 가야할 영역일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분명 가치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시는 수퍼바이저 상담선생님의 말씀에,
오히려 깊~~~~은 안도가 되었던 것이다.
적어도 지금 잘 가고 있구나..
갈등하고 고민하고 때로 부딪혀도..
이렇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게 정상적인 것이구나.. 하는 안도.
내 존재자체가 원래 그러하다는 것을
쉽게 말해,
한계와 불완전함을 지닌 '한 인간'에 불과한 내 주제를 알때, 내 분수를 알 때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겸허하게 인정하고 수용하게 될 때
진정으로 안도할 수 있다는 것을 상담을 통해 경험해가고 있다.
앞으로도 상담을 통해 성장해나가게 될 시간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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