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매일 습관적으로 읽는 유기성 목사님의 영성 읽기를 읽다가.. 이거다! 싶으면서 한번 더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유혹적이면서도 그리 위협적이면서도 그 실체는 느끼기 힘든 보편화된 우상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먼저는 이 부분들이 와닿았다.
[ 10. 실제 (앞의 내용들의 선교사들 처럼) 순교하지 않아도 타 문화권 선교사들에게는 순교 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과 친척들과 헤어지는 것, 안락과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 성공의 사다리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는 것, 초라한 섬김의 사역에 머무르는 데 만족하는 것, 개인적인 야망에 대하여 죽는 것, 자신의 존재의 일부가 되어버린 물려받았고 익숙해진 문화를 포기하는 것 등입니다.
11. 우리는 이렇게 사역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죽으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 한 것은 그가 계속하여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고전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편안함', '자아실현' 이라는 것.
현대의 숨겨진 우상이라는 것이 조금더 가슴에 파고들게 와닿았다.
이 자체가 우상이라기보다는, 이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죄의 산물들을 동반하기 쉽가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어온 수많은 과학기술의 진보는 편안함을 추구하던 끝에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동반한 것은, 사람이 기계나 기술보다 후로 밀리고, 사람들은 정신적 소외라는 문제를 떠안에 되었다는 사회 현상이다.
얼마전, 태국에서인가 만든 아주 인상깊은 씨에프를 본적이 있다. 스마트폰이 거의 나이 불문 계층을 불문한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급되면서 한 공간에 있어도 각자가 자신만의 공간을 형성하면서 스마트 폰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다룬 의미있는 광고였다.(공익광고였던 것 같다.)
편안함만을 극도로 추구해오던 우리 사회의 단적인 모습 중 하나가 그러한 모습이며, 인내성도 참을 성도 없어져가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편안함 추구의 한 어두운 산물 아닌가 싶다.
자아실현 역시 그러하다.
자아실현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그럴싸한 느낌으로 포장되어 심지어 학교 교과서에도 공공연하게 이상적인 목표처럼 등장하곤 한다.
자아실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아실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과정을 통한 결과가 되어야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한 수단에 머물러야 함에도, 사회에서는 이것을 공공연한 '궁극적 목표'라고 주입하고 있다.
자아실현이 잘못되게 흘러간 예 중 하나로, 페미니즘 운동 중 여자들의 양육, 가사로 부터의 해방을 외친 흐름에서도 우상성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예전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사회적 삶과 완전히 분리되어 집안에만 머물러있어야하는 존재로, 가사와 양육을 남자와는 별개로 혼자서 전담해야하는 존재로만 여겨지던 부당함이 있었고, 이것은 수정되어져야 할 부분이 분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수정의 과정 중에,
하나님이 여자에게 고유하게 맡겨두신 자녀 양육 과정에 필수적인 모성, 애착.. 같은 역할들마저 부인한채 그들도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이유로 (혹은 나와 내 가족의 더 괜찮은 삶을 위해 돈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이 역시 자아실현의 하위 항목이라 본다) 갓난 아기들을 누군가의 손에 맡겨둔 채 일자리로 뛰어든다.
유아교육, 심리학 분야에서 볼 수 있는 대상관계이론과 애착이론 등의 관찰, 실험 결과들은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아주 무서울만큼 보여주고 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애착과 타인과 관계맺는 양상이 건강하고 안정되게 형성되지 못한채 불안을 경험한 아이들은 대체로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평생 사회적 관계에서의 불안정을 경험하며 살고, 이것이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특히,
아이들 각자의 적성과 은사가 존중되지 못한 채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식으로 교육하는 것에도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
이 역시 '성공'이 '자기 실현' 이라고 보며 자기실현이 곧 인생의 목표라고 보는 잘못된 전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 같다.
결국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러운 '자살율 1위 국가'가 되었고, 특히 청소년 자살의 심각성은 이제 와서 손 쓸래야 손 쓸 수 없는 수위에 이르러 있다.
여자들의 '자아실현'이라는 것이 잘못된 우상이 되어 흘러갈때에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이 무너지고 그것은 곧, 이 사회에 나갈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 오염되어 망가지고 독이 득 부품과 물건들을 생산하여 내보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 세대의 흐름을 본받지 않고 지혜로운 여인이 된다는 것, 현명한 아내가 되어 가정을 지키고, 성경적인 양육자가 되어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
공부도 필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하에, 정말 깨어서 검같이 예리한 말씀으로 터치받는 것이 너무도 절실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유혹적이면서도 그리 위협적이면서도 그 실체는 느끼기 힘든 보편화된 우상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먼저는 이 부분들이 와닿았다.
[ 10. 실제 (앞의 내용들의 선교사들 처럼) 순교하지 않아도 타 문화권 선교사들에게는 순교 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과 친척들과 헤어지는 것, 안락과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 성공의 사다리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는 것, 초라한 섬김의 사역에 머무르는 데 만족하는 것, 개인적인 야망에 대하여 죽는 것, 자신의 존재의 일부가 되어버린 물려받았고 익숙해진 문화를 포기하는 것 등입니다.
11. 우리는 이렇게 사역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죽으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 한 것은 그가 계속하여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고전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편안함', '자아실현' 이라는 것.
현대의 숨겨진 우상이라는 것이 조금더 가슴에 파고들게 와닿았다.
이 자체가 우상이라기보다는, 이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죄의 산물들을 동반하기 쉽가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어온 수많은 과학기술의 진보는 편안함을 추구하던 끝에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동반한 것은, 사람이 기계나 기술보다 후로 밀리고, 사람들은 정신적 소외라는 문제를 떠안에 되었다는 사회 현상이다.
얼마전, 태국에서인가 만든 아주 인상깊은 씨에프를 본적이 있다. 스마트폰이 거의 나이 불문 계층을 불문한 전세계 사람들에게 보급되면서 한 공간에 있어도 각자가 자신만의 공간을 형성하면서 스마트 폰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다룬 의미있는 광고였다.(공익광고였던 것 같다.)
편안함만을 극도로 추구해오던 우리 사회의 단적인 모습 중 하나가 그러한 모습이며, 인내성도 참을 성도 없어져가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편안함 추구의 한 어두운 산물 아닌가 싶다.
자아실현 역시 그러하다.
자아실현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그럴싸한 느낌으로 포장되어 심지어 학교 교과서에도 공공연하게 이상적인 목표처럼 등장하곤 한다.
자아실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아실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과정을 통한 결과가 되어야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한 수단에 머물러야 함에도, 사회에서는 이것을 공공연한 '궁극적 목표'라고 주입하고 있다.
자아실현이 잘못되게 흘러간 예 중 하나로, 페미니즘 운동 중 여자들의 양육, 가사로 부터의 해방을 외친 흐름에서도 우상성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예전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사회적 삶과 완전히 분리되어 집안에만 머물러있어야하는 존재로, 가사와 양육을 남자와는 별개로 혼자서 전담해야하는 존재로만 여겨지던 부당함이 있었고, 이것은 수정되어져야 할 부분이 분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수정의 과정 중에,
하나님이 여자에게 고유하게 맡겨두신 자녀 양육 과정에 필수적인 모성, 애착.. 같은 역할들마저 부인한채 그들도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이유로 (혹은 나와 내 가족의 더 괜찮은 삶을 위해 돈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이 역시 자아실현의 하위 항목이라 본다) 갓난 아기들을 누군가의 손에 맡겨둔 채 일자리로 뛰어든다.
유아교육, 심리학 분야에서 볼 수 있는 대상관계이론과 애착이론 등의 관찰, 실험 결과들은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아주 무서울만큼 보여주고 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애착과 타인과 관계맺는 양상이 건강하고 안정되게 형성되지 못한채 불안을 경험한 아이들은 대체로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평생 사회적 관계에서의 불안정을 경험하며 살고, 이것이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특히,
아이들 각자의 적성과 은사가 존중되지 못한 채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식으로 교육하는 것에도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
이 역시 '성공'이 '자기 실현' 이라고 보며 자기실현이 곧 인생의 목표라고 보는 잘못된 전세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결과 같다.
결국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러운 '자살율 1위 국가'가 되었고, 특히 청소년 자살의 심각성은 이제 와서 손 쓸래야 손 쓸 수 없는 수위에 이르러 있다.
여자들의 '자아실현'이라는 것이 잘못된 우상이 되어 흘러갈때에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이 무너지고 그것은 곧, 이 사회에 나갈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 오염되어 망가지고 독이 득 부품과 물건들을 생산하여 내보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 세대의 흐름을 본받지 않고 지혜로운 여인이 된다는 것, 현명한 아내가 되어 가정을 지키고, 성경적인 양육자가 되어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
공부도 필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하에, 정말 깨어서 검같이 예리한 말씀으로 터치받는 것이 너무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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