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 체력장의 일부로 400m 장거리달리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떠올리면 웃기고 부끄러운 기억의 일부로 남아있다.
선생님의 '땅'하는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나는 일단 미친듯이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달리니 금새 내가 다른 모든 아이들을 제치고 홀로 맨 앞에서 질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혼자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기분과 내가 1등으로 달린다는 기쁨에 젖어 있었을 뿐, 그 뒤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80미터나 100미터 달리기였음 모를까, 초등학생이 길고 긴 400미터에 달하는 장거리를 뛰어야 했음에도 처음부터 온 힘을 다 빼버린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숨이 턱턱 막혀 오기 시작했다.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결국 나는 거의 달리지 못하고 나중엔 거북이 속도로 겨우 걷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는동안 내 뒤에 천천히 달리던 모든 친구들은 하나 둘씩 나를 앞질러 갔고, 그들도 물론 처음보다 힘들어보이긴 했지만 처음 속도를 어느정도 일정하게 유지하며 꾸준히 달리는 것을 보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겨우겨우 꼴찌로 완주하는 정도로 달리기는 끝이 났다.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하니 우리 인생도 그렇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표현을 쓴다. 진부해보이나 가장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무조건 빨리 달리고 싶다고 속도만 내기 쉬운것이 젊을 때의 혈기 인 것 같다.
다른 이들보다 내가 더빠르게 달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으면, 내가 참 잘하고 있는 것 같고 특별한 것 같고 말이다.
처음부터 내가 앞서가지 못하고 뒤에 달리고 있으면 무언가 뒤쳐지고 실패하는 것 같은 불안감에도 많이들 시달린다.
하지만, 인생은 80미터,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400미터 길고 긴 장거리 달리기이다.
숨이 턱턱막혀 기절직전으로 겨우 완주하는 최저 조건만을 만족시키기 원한다면, 생각없이 일단 빨리 달리기만 해야겠지만, 그런 모습을 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큰 욕심내지 않아도 차분하게 속도를 유지하며 꾸준히 달린 사람들은 결국엔 안정된 완주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결혼 후 가까이 지내는 주변 어른들을 보면서, 특히 일중심적으로 평생 달려만 오시던 남자분들이 불혹의 나이 마흔 정도(어떤 분들은 50이기도 하고..)가 되면 거의 대부분 자신의 인생을 한번 깊이 돌아보게 되시더라. 그게 사람 심리인것 같다. 그때가서 후회하는 분들도 많이 봤고, 불혹을 터닝포인트로 하여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이나 직업을 택하여 사시게 됐다는 분들도 몇 보았다.
그래서인가, 언제부터 나의 가장 큰 기도제목 중 하나가 된 것은
'남들보다 조금 늦어도 좋고, 겉으로 뒤쳐져 보여도 좋으니, 정말 처음부터 방향을 제대로 잡고 후회없게 달리고 싶다. 끝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 인생을 완주하고 싶다는'는 것.
창피했던 어린시절마라톤의 경험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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