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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방>/상담 노트

상담에 대해 요즘 드는 이런저런 생각

#1.

상담을 준비하며 미리부터 너무도 철저하게 구조화된 상담계획을 세우려했던 것.

가만히 살펴보니 이것은 나 자신의 불안을 커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완벽한 상담을 하고 싶은 마음,

혹여라도 내가 컨트롤하고 다룰 수 없는 상황에 맞딱뜨리고싶지 않아, 모든 가능성을 대비해두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완벽히 대비하려고 했던 마음 같은 것..?


그런데, 너무 철저하고 빡빡하게 구조화한 상태로 상담에 임하면(오늘 무엇을 할지, 다룰지 등) 내 마음이 조금은 더 편안할지 몰라도,

그것이 정말 내담자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길은 아닐 수있겠다 는 생각이 든다.


내담자의 존재자체를 온전히 수용하고 그가 가져온 문제들을 편견없이 다루어져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내 안에 없도록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적당한 구조화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담자의 문제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을 갖고 진실된 호기심을 함께 갖고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의 '충분한 공간' 이 아닐까.

 

 

 


 

#2.

성경적 상담과 사람.

여러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참 도움이 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요즘 특별한, 그리고 정말 깊은 애정과 연민이 가는 청소년 내담자를 만나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나 혼자서만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준비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실제 내담자를 만났을 때는 나의 종교적 색채(물론 하나님이 나에게는 종교가 아닌 실재이고 사실이고 삶 자체이지만, 세상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상담자의 '종교'라고 부르니까)를 최대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담자 아이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선에 머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중간중간에 하나님을 언급하는 정도에 그친채 여러 세상의 심리치료적 도구들을 가지고 접근해보려고 애썼다고 할까.

 

그런데 이번주 내내 너무도 심각하게, (아직 몇번 만나지 않았을 지라도) 그간의 상담들이 정말 진정으로 나의 내담자에게 꼭 필요한 것을 공급해줄 수 있는 상담이었는지 나 스스로 질문하고 또 질문하게 되었다. 쉽사리 yes라고 얘기할 수 있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치,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에게 꼭 필요한 최적의 약이 무엇인지 알고있고,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단 다른 약이라도 임시대체물로 써보라고 하며, 최적의 약을 주지 않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달까..?

 

이것은 전부터도 상담을 할 때면 잠시 잠시 들었던 고민이기도 했다.

 

아주 경미한 문제를 가지고 온 친구였다면 이런 고민이 덜했을지도 모르겠데,  여러번 죽음을 생각한 내담자일 경우 등,,, 실존적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해결되어야만 하는, 정말 '영적인 대화'가 빠질 수 없는 내담자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수많은 세상의 심리치료적 방법들이, '하나님을 앎'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존적이고 직접적인 성경적 접근의 효과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나는 확신하는 사람이다.(그것이 강요가 되어 영적 폭력의 형식 또는 주입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함은 당연한 것라는 전제하에.)

 

물론 하나님은 자연계 만물을 통한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기에, 세상의 여러 지식들을 '무시'해버릴 수는 없다고 하지만, 이것들은 인간의 심리 문제에 대한 부차적인 설명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숨겨진, 영원의 가치에 대한 내재된 갈구가 있을 것이며, 나를 통로로 하나님께서는 분명 일하시기 원하신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세계, 영원의 가치, 하나님의 창조자되심, 이 아이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자녀 삼아주신 이 아이의 정체성, 가치...

 

이 모든 것을 도대체 어떤 심리학적 이론들이 설명해주고 채워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조금은 단순해지기로 했고, 인도하시는 흐름에 따라가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은 소중한 나의 내담자와의 만남에서, 그에게 필요한 영적 대화와 영적 질문들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도우려했고, 제안했고, 초대했다.

 

비록 믿어지지 않을지라도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함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작은 신음소리 같은 고백을 분명히 들으셨을 거라고 믿는다.

적어도 내가 해야할 일의 '최소한'은 했다는 (내가 숨기고 있던 용한 약을 전달해주었다는) 안도감과 감사의 마음이 든다.


 

내담자와의 만남의 자리에는 우리 두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분명히 성령님께서 함께 임재하여 앉아계신다.

그와 나를 모두 돕고 계신다.

이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너무도 중요한 것 같다.

 

ps.

차라리 교회 상담실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다면 편할 지 모르겠다. 나야 현재 지금 수련생 신분이나 프리랜서 신분정도로서 외부에서 (남편이나 지인들을 통해) 연결되는 내담자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기에, 상담을 하면서 나의 가치관이나 방식에 기반한 상담을 하는 것이 좀더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이지만, 만약 어떤 일반 센터나 기관에 소속되어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큰 제약과 혼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교회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도 용하다는 세상의 심리학적 방법들을 성경적 진리보다도 더 신뢰하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지만, 적어도 그곳에서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고, 이를 통해 해답을 찾을지 모른다는 마음의 기대가 있는 내담자들이 찾지 않을까도 싶다.

크리스찬으로서 이 세상에서 심리치료를 공부한다는 것은 강점이면서도, 한편으론 그래서 더 어려운 일인 것도 같고.

하나님은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이 상담이라는 분야를 어떤 곳에, 어떤 방법으로 쓰시길 원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