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은방>/책&글 나눔

♡가정주부로서의 영예♡ ['여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중 발췌]

♣ 가정 주부로서의 영예♣ 



  어느 날, 병원 대기실에 앉아 환자용 설문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업"이라고 적힌 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뭐라고 써야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내 직업은 지난 29년 동안 한결같았다. 철자가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초등학생도 쉽게 적을 수 있는 단어였다. 그런데 나는 왜 단어 하나만 쓰면 되는데도 그 작은 빈칸을 채우는 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일까? 왜냐하면 내 직업이 가정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설문지에 거짓을 적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가정주부라는 말 대신 그 일을 좀 더 중요한 일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창의적인 표현을 찾으려고 애썼다. 바로 그 때 '내가 지금 가정주부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더 신경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가정주부라는 내 직업을 하나님꼐서 주신 고귀한 사명으로 여기지 않고, 속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병원 대기실에 앉아 속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는 그 빈칸에 신속하고도 자랑스럽게 '가정주부'라고 적어넣었다.


# 모든 것이 변하다

 

  나처럼 직업이 가정주부인 여성들은 내가 설문지를 작성하면서 주저한 이유를 공감할 것이다. 그들도 직업을 기록하는 칸을 빈칸으로 남겨놓고 싶을 것이다. 남편의 회사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기를 주저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날 저녁에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여러찰{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친척들에게서 "아직 젊고 잠재력이 많은데 집에만 있으면서 재능을 썩히는 것은 좋지 않아요.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이든 해 봐요"라는 조언을 수없이 들을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은 좋은 뜻에서 그렇게 말할 것이다. 다니엘 크리텐든은 "아내가 되는 일이나 자녀를 기르는 일, 또는 집안일을 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런 일로 간주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했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아내와 어머니로서 해야할 일과 집안일들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자신감도 없고 확신도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해방'이라는 이념이 그런 현사을 부추긴다. 크리텐든은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What Our Mothers Didn't Tell Us)'이라는 책에서 여성 해방운동이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여성 해방운동은 여성들이 집과 자녀들에게서 벗어나 일터로 나가면 더 행복하고도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녀 양육을 맡기고는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느낀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감정이 사회와 성차별주의자에 의해 우리에게 주입된 것이므로 아버지처럼 어머니도 그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왔다. 오히려 그런 걱정을 억누르고,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하거나, 최소한 고용주와 어린 자녀의 요구를 비교해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한다고 배워왔다."

 

  크리텐든의 표현을 빌리면, 여성 해방주의자들의 그런 메시지는 '놀라운 설득력'을 발휘했다. 18세 이하의 자녀를 둔 미국 여성 중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는 56.6%, 1990년에는 66.7%, 2001년에는 73.1%로 증가했다.


# 인기없는 직업이 되어버린 가정주부

 

  여성 해방운동의 핵심은, 집안일을 멸시하고 가정주부로서의 일을 경멸하는 데 있다. 특히 여성운동 초창기에 이런 적대적인 항변의 목소리가 매섭고도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그 울림은 오늘날 우리의 귀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오늘날 가정주부라는 직업은 별로 인기가 없다. 직업을 사회 기여도라는 기준으로 나열한다면, 가정주부는 매우 낮은 위치를 차지한다. 많은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집 안에 머무러 있기를 꺼려한다. 그러다보니 가정주부는 지위가 매우 낮은 직업으로 간주된다.
 (.........사례 중략..........) 이 기자가 가정주부를 '집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낙제생'이라고 묘사한 것은 가정주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는 가정주부라는 직업에 대해 호의적이거나 고무적이지 않다. 요즘 여성들은 집에서 일하는 것보다 밖에서 일하는 것을 더 영예롭게 생각한다. 도로시 패터슨은 그런 성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가정을 보살피는 일에 관하여 자신의 가정을 돌보는 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고, 남편을 극진히 섬기는 일에 관하여 그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 회사 사장이라면 얼마든지 옳으며,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관하여 자신의 자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녀를 돌보는 일이라면 대통령상을 수상하고도 남을 만큼 훌륭한 섬김으로 여겨지곤 한다."


# 여성 해방운동의 실패

  여성해방운동은  가정주부의 역할을 훼손하고, 여성들을 일터로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여성에게 행복과 만족감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다니엘 크리텐든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하겠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전례없는 자유와 기회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왜 여성 잡지에 실린 기사들은 그토록 비관적인지 궁금하다. 나는 국회도서관에서 '마드모아젤', '글래머','보그','레드북','코스모폴리탄','맥콜'과 같은 잡지의 과월호 30년 치를 살펴보았다. 베티프리단(미국의 여성학자)은 그런 잡지들을 읽고는, '1963년에 자기 시대 여성들이 불행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프리단의 시대에서 우리 시대로 넘어오면서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졌을까? 만일 여성들이 구입하는 잡지에 그들이 행복해졌는지에 대한 진실이 담겨있다면, 그 대답은 단연코 '아니오'이다. 사실 이 잡지들은 1950년대에 약을 복용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교회 지역의 여성들보다 오늘날의 여성들이 훨씬 더 비참하고 더 불안정하며 남자에게 더 많이 집착하고, 더 큰 좌절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 해방운동은 그 명칭과는 달리 여성 해방에 실패했다. 그러나 여성해방주의의 철학은 스스로를 여성 해방주의자로 생각하지 않는 많은 여성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여성이 그것을 받아들여 적용할 정도로 주류 사회의 가치관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바르게 의식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독교인 여성들 가운데도 여성 해방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적지않은 기독교인 여성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여성들의 대열에 합류해왔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여성 해방주의라는 탁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살아왔다. 그러므로 그런 유해한 요소가 우리 모두에게 영햐을 미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사를 돌보는 일, 즉 디도서 2장 5절에서 말하는 '집안일'과 관련해서는 특히 더 그런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으로 돌아가기를, 그리하여 집안일에 관한 그분의 명령을 거스르는 태도나 행위를 단호하게 고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성경과 가정

  성경은 아내와 어머니들이 집안일을 하는 것에 관해 어떻게 가르칠까? 첫째, 디도서 2장 5절은 "집안인을 하며"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내와 어머니들의 가장 중요한 일터가 가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젊은 과부들에게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집을 다스리라고 권고한다(딤전5:14참고). 잠언 31장 역시 이상적인 아내이자 어머니를 현숙한 여인으로 간주한다. 가정은 현숙한 여성의 일터이다. 
 
   성경은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이 남자들에게 있고(딤전5:8참고), 가정을 보살피는 책임이 여성들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물론 성경은 아내와 어머니들이 집 밖에서 일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치도 않고, 일을 해서 보수를 받는 것을 금하지도 않는다. 성경은 다른 일터에서 일을 해 수입을 거두면서도 가족들과 가정을 보살피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던 경건한 여성들을 소개한다.

   잠언 31장에 등장하는 여인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녀는 일생동안 집밖에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 그녀는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양식을 가져왔으며, 밭을 사고 포도나무를 심고, 옷을 짓고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팔았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주된 동기와 목적은 가족과 가정을 돌보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가정에 지극한 관심을 기울였던 이 여성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기준으로 세우셨다. 이처럼 집안일을 돌보는 것은 여성들이 항상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


  독신 여성들에게 권고의 말을 한마디 건네고 싶다. 미혼여성은 학교공부나 직장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든 모든 여성은 가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자신이 거하는 곳을 가정으로 만들고, 집안일을 익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가정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 가정을 생각하는 마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상황에 알맞게 이끌어 가신다. 살다보면, 집밖에서 일을 하느라 집안일을 소홀히 하기 쉬운 때가 있다. 자녀들이 다 커서 독립했거나 자녀가 없는 여성은 어린 자녀를 셋이나 둔 여성보다 집 밖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마련이다. 그러나 집 밖에서 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또한 일하려는 동기도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내가 집 밖에서 일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기적인 이유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인가?"
"이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복음을 존중하는 것인가?"
"이 일이 남편을 돕는 것인가?"
"이 일이 우리 가족을 더 풍요롭게 하는가?"
"이 일이 가정을 돌보는 나의 역할을 방해하지는 않는가?"
이런 질문들을 고려하면, 지혜롭게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의 가장 우선적인 의무가 가정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라.

 

  여기서 잠시, 특별히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아내와 어머니, 곧 집밖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있따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내 친구 중에도 그런 여성이 둘이 있다. 그들은 이기적인 동기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형편때문에 전일제로 일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전업주부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신디의 남편은 심신이 쇠약해지는 병에 걸려 십년 전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디는 그때부터 가정주부로 일하고싶은 마음을 접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떠맡았다. 그러나 그녀는 일주일에 40시간씩 일하면서도 가정을 향한 열정과 기쁨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아내이자 가정주부로서의 일을 나의 가장 우선적인 임무로 생각한다. 일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지만, 일은 부차적인 소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집을 휴시고가 평화와 질서의 터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나의 행위와 말과 창의적인 은사를 통해 나의 가정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안식처가 되기를 원한다."
(...중략....)

# 가정의 통치자

  "집안일을 하라"라는 디도서 2장의 명령은 디모데전서 5장 14절의 말씀을 통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집을 다스리고"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는 매우 강한 의미를 전달한다. 이 말은 가정의 통치자이자 군주, 또는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즉,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가정의 운영자가 된다는 것, 곧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의무를 온전히 맡아서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도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 그녀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졌다. 그녀는 남편을 돕고, 자녀들을 돌보고, 허드렛일을 하고, 종들을 감독하고, 밭을 관리하고, 돈을 투자하고, 상품을 사고 팔았다. 잠언 31장의 아내는 가정사 전반을 관장했다.
(...중략...)
 

  가정을 "다스리라"는 명령과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할 두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첫째, 이 명령은 남편의 권위를 빼앗아도 좋다는 허가장이 아니다. 아내는 가장인 남편의 지도력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가정을 운영해야 한다. 둘째. 이 명령은 요즘 유행하는 풍조인 '집안일에 대한부부 공동책임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가정을 운영하는 것은 아내의 일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와 똑같이 집안일을 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남편에게 정당하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가 있다.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러므로 남편들을 집안일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운영할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그런 임무를 부여하셨다.
 

  그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마치 벽돌을 짊어지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운을 내라. 하나님게서 주신 이 소명은 짐이 아니라 큰 만족감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원천이다. 우리 자신이 어떤 일을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지닌 행정가가 아니더라도, 또 우리가 사라 에드워즈나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만큼 재능이 뛰어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가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능을 허락하셨다. 가정의 운영자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모두 공급해주실 것이다.

# 늘 배우려는 태도

(...중략...)

"전업주부로서 가정을 운영하며 아내와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삶은, 심한 가뭄으로 바짝 말라 아무 쓸모가 없어진 강물이 아니라 풍성하게 흘러넘치는 오아시스와 같다. 그것은 사람의 재능과 기술을 쓰지 못핟록 가둬두는 암울한 감옥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창의성과 힘을 의미있는 일에 쏟아붓게 만드는 경이로운 기폭제이다."

# 가정 운영자가 해야할 일
 성경은 가정의 운영자가 해야 할 일을 놀랍도록 간단하게 명시한다. 즉, 아내는 남편의 돕는 배필이다(창1:26-31, 2:7-25; 고전11:8,9 참고). 더글라스 윌슨은 이렇게 설명한다.

 

  "남편에게는 아내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내는 남편을 도와야 한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동반자가 되어 다스리는 일을 감당하도록 계획하셨다.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문화적 소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남편 혼자서는 이 소명을 감당할 수 없다. 남편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 남편은 소명을 부여받았고,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헌신함으로써 그 소명에 이바지해야 한다. 남편은 소명을 지향하고, 아내는 남편을 지향해야 한다."

  가정의 운영자로서 아내의 주된 목표가 남편을 지향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아내의 책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을 가장 잘 도울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 어느 행복한 어머니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이 짧은 말에는 많은 진리가 담겨있다. 가정의 운영자인 아내의 태도는 집안의 분위기와 품격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일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남편과 자녀들과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머물고 싶어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중략...)
 나는 어렸을 때 나의 어머니가 즐겁게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머니는 늘 기쁜 얼굴로 가족들을 섬기려고 노력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짓거나 웃을 때가 많았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면서 찬송가를 부르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에 나는 이따금 학교에서 돌아와 우리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을 보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게도 나의 어머니는 나와 내 친구들을 기쁘게 대해 주셨다. 내 친구들의 어머니들 중에는 자녀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종종 불행한 듯한 얼굴로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때 '우리 엄마는 행복한 엄마라서 정말 기뻐'라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남편과 자녀들은 아내와 어머니로서 우리가 즐겁게 일하는 것을 보면서 고마움을 느낀다. 진 브랜드는 "소시지와 콩을 요리하는 사람이 즐겁게 요리할 때와 싫어하면서 요리할 때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고 말했다. 


# 하나님을 위한 가정

 

  집안일은 대부분 겉으로 두드러지게 티가 나지 않는 허드렛일이며, 엄청난 희생과 섬김을 요구한다. 때로 화장실 바닥을 문질러 닦거나 더러운 옷을 빨 때면 우리에게 주어지 소명을 잊어버리기 쉽다. 주변을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외에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 생각이 들면 집안일에 대한 우리의 열정이 사그라지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의 관점이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집안일은 지극히 고귀한 소명이다. 디도서 2장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사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는 '집안일을 함으로써' 불신자들의 눈에 복음을 매력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우리의 가정은 복음을 보여주기 위한 진열장과 같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가정 주부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거나 우리의 노력으로 일군 가정생활이 탁월하고도 뛰어난 것을 보고서 호기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우리의 비결을 알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가정은 엄청난 사역이 이루어지느 장소가 될 수 있다. 우리의 가정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보살필 수 있는 전략적인 발판이나 다름없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창시자인 도슨 트로트맨은 "나는 세상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가장 위대한 전략 기지 가운데 하나가 가정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아내 에디스 쉐퍼를 지켜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쉐퍼 부인의 둥근 계피빵이 쉐퍼 박사의 설교로 주님께로 인도된 사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했다." 집안일을 통해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의 가정을 피터 마샬이 묘사한 '사랑스런 거처'로 만들고 싶은 열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전에 상원 의회의 설교자로 활동했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올봄에 방문한 한 가정은 마치 작은 천국과 같았다. 아마 그 집에 사는 사람들도 틀림없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곳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정제된 생활의 품격과 하나님을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중략...) 마치 기진맥진한 상태로 길을 가다가 황홀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늒지느 낙원과도 같은 가저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가정을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의 가정은 남편과 자녀들을 위한 기분좋은 안식처이자 다른 기독교인들을 너그럽게 대접하는 성소요,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주님, 우리의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한다.

 

 

#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

  가정주부로 살아온 지난 29년을 돌아보면, 수많은 추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월요일마다 가정의 밤으로 보냈던 일, 남편과 난롯가에 앉아 함께 책을 읽었던 일, 밤중에 아이들을 안고 노래를 불러주고 기도해주었던 일, 아이들을 꺠워 잠옷을 입은 채로 도넛 가게로 데려갔던 일, 딸들에게 '초원의 집'을 읽어주었던 일, 어린 아들에게 '패딩턴 베어'를 읽어주었던 일 등이 기억난다.

 

  그 밖에도 결혼 후 처음으로 갈등을 겪은 신혼부부를 상담했던 일,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교제하고 즐거워했던 저녁 시간, 구원받지 못한 이웃에게 아기 용품을 선물해던 일, 하룻밤 묵는 손님들을 대접했던 일, 거실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긷했던 일, 남편과 커피를 마시며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던 일, 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나서 서로 은혜로운 용서를 주고받았던 일, 가족들끼리 저녁식사를 하며 여느때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일, 자녀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했던 일 등이 기억난다.

  내가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더 있다. 어느 날, 내가 부엌에서 아침 식사에 사용한 그릇을 씻고 있는데 채드가 부엌에 들어왔다. 당시 네 살이었던 채드는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부르면서 냉장고 앞을 빙빙 돌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예요.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예요"라는 내용의 노래였다. 단 한 소절에 불과한 노래였지만, 아들은 5분 동안이나 그 노래를 불렀다. 나는 더러운 접시를 씻으면서 아들을 내려다보고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출처: 여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캐롤린 매허니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