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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방>/책&글 나눔

[글 스크랩] 세 청소부 이야기: 잡, 커리어, 소명의 차이점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인간은 일이 소명이 될 때 가장 행복해지는데도 왜 그런 사람들은 그토록 소수일까? 비비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허드렛일도 얼마든지 소명이 될 수 있는데, 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 수백 명의 직원들을 부하로 거느린 기업 임원들마저 자신의 일을 한낱 잡으로 여기는 것일까? 내가 속한 언론계 기자들도 일을 점점 잡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이다. 왜 다수의 직장인들은 스스로가 불행해지는 직업관을 선택하는 것일까?

근본적 이유는 직장이 조직되고 운영되는 방법에 있다. 첫째, 많은 기업에서 겉으로 내세우는 조직의 존재이유(미션)와 실제 추구하는 바가 불일치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겉으로는 '환자를 돌본다' 는 게 미션이라면서 실제로는 '수익' 추구에 안달 난 병원이라면 청소 직원은 물론, 의사 간호사들마저 자신의 일을 조직의 존재 이유와 연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겉으로는 대기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는 차를 생산하는 게 미션이라면서 이윤을 위해 배기가스 배출 사기를 치는 자동차 회사에 일하는 직원 역시 일을 소명으로 삼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현실의 많은 기업에서 미션은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직장인들 다수가 자기 기업의 미션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냉소를 보낸다는 게 그 증거다.

둘째, 직장에서 개인의 자율이 부족하다는 것도 큰 문제다. 조직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할 자유가 없다. 만약, 비비안이 객실 청소 시간과 방법에 대해 매우 세밀하게 통제를 받았다면, 그래서 집을 떠나온 고객을 돌보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전혀 없었다면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인식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스스로를 그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 부품으로 여겼을 것이다. 특히 한국은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문화가 강하다. 임원들 역시 최고경영자나 오너의 눈치를 살펴, 그의 의중을 실현하는데 집중한다. 자율적이고 독립적 존재라고 보다는 수동적 집행자에 가깝다. 한낱 기계부품에 불과하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이래서는 조직의 존재 이유를 실현해 타인을 이롭게 한다는 '일의 가치' 는 점점 남의 이야기가 된다. 일은 소명이 아니라 잡이 되고 만다. 안타깝다. 오늘날 한국의 수 많은 직장은 조직원들이 일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게 의미를 죽이는 '의미 킬러(meaning killer) 처럼 관리되고 있다.

 

김인수 매일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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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3738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