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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방>/생각방

[S.E생각] 우리 삶을 이끄는 추동이 두려움인가 사랑인가



인간은 과거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존재라고 주장했던 프로이드와 달리, 심리학자 아들러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동기'를 따라 살아가는 목적있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나 역시 후자의 주장에 더 동의한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 '두려움'에 대해 생각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수많은 세상 사람들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동기 또는 추동력은 바로 ​두려움이 아닐까. ​오지 않은 막연한 미래를 위해 조금 더 안정된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어야한다는 두려움, 혹은 더 쌓아두어야한다는 두려움.

실은 그렇게 배워온 것이다. 우리 교육이 그렇게 가르쳐왔으니까. 성인이 된 나 역시도 오랜시간을 그러한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교육 아래에서 자랐고,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추동력에 이끌려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이 은근히 많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의 아동청소년들도 여전히 이런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들은 우리보다도 더 더 강도 높고 교묘한 ​적자생존식 교육을 세뇌받고 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현재를 ​미래를 위한 ​'준비기'로, 그리고 당연한​ '희생기'로만 가르치고 있는 우리 교육이 생각할 수록 너무 안타깝다.

하나님은 오늘 이 하루를 미래를 위한 수단이나 희생의 날로 우리에게 주신 게 아니다. 그냥 ​오늘 이 자체를 ​숭고한 목적 자체로 선물해주셨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 열심히 일하는 것. 당연히 그래야한다. 그리고 그래야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 동기가 내가 남들보다 뒤쳐진 삶을 살까봐, 혹은 막연히 내 미래가 암울해질까봐가 그게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이끌려가는 움직임이 아닌, 더 높고 숭고한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되어야만 한다.

두려움이 아닌 한 차원 더 높은 사랑의 동기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훨씬 더 목적에 이끌린 공부를 할 수 있고,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동기로 일하는 이들이 더 일 다운 일을 해낼 수 있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동기로 양육하는 이들이 더 양육다운 양육을 할 수 있다.

다수가 이렇게 살지 않아도,
나부터 이렇게 살자.
우리 가정부터 이렇게 살자.
나부터 이런 마음으로 오늘에 임하자!
다짐해보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