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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규방>/영화와 책

2014.2.17 - 영화 신이 보낸 사람 후기 (스포주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영화 특유의 무겁고 가슴아픈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유모를 답답함과 짜증이 먹먹한 가슴과 함께 뒤엉켜 있었다.


이 영화의 유익한 점: 

1. 가감없는 북한인권의 현실고발

이 영화는 북한의 인권현실을 북한 지하교회라는 공동체를 투영해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솔직히 있는 그대로 그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실제는 이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니깐.

그들의 인권이 기독교인이라는 것만으로 철처하게 유린당하는 장면을 뽈 때 누구라도 믿음의 자유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이러한 자유가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2. 내 믿음의 진정성을 돌아보게 함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편하게 신앙생활하고있는 남한의 크리스천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당신들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인가?' 라는 강력한 질문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귓가에서 울린다. 워낙 고문과 죽음의 위협이 현실적이었던지라 그 가운데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초인적으로 보였을 정도였다. 

"남조선이 가나안입네까?" 라는 심오한 질문이 그들에겐 한 줄기의 희망일텐데, 만약 그들이 오늘 우리 교회에 온다면 무슨 말을 할까. 또 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3. 배우 김인권과 조연들의 열연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제외하고는 요즘에 그렇다 할 진중한 영화가 없는 상황에서 이 영화는 단연 돋보인다. 생각할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또 김인권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게되는 영화이다. 코믹연기에서 진지연기까지 스팩트럼이 넓은 연기파 배우임에 틀림없다.

또한 홍경인, 최규환, 지용석같은 조연들이 잘 받쳐준다. 지용석 같은 경우는 정신지체청년을 연기하는데 중간중간 그 눈빛이 장난이 아니다. 포스를 내뿜는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흥행을 목적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들이 많다. 

내가 왜 짜증이 나고 답답했는지 생각을 정리할 목적으로 이 후기를 쓴다



1. 대놓고 기독교지만 대비가 아쉽다

고문당하는 중간에 시편 23편을 소리내 암송한다던지, 총살당하기 전에 평안한 얼굴로 찬양을 한다던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간절히 기도를 한다던지, 영화 전반의 기독교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까지 '기독교 영화' 라고 불리기에는 손색이 없다. 하지만 아쉬웠다. 이들의 신앙과 대비가 되는 인물들이 부족해 이들의 숭고한 신앙이 충분히 부각되지 못한 것 같다.

첫 고문장면에서는 철호와 영미가 대비가 되는 듯했다. 사실, 철호는 영화 내내 이 '믿음'에 대한, 혹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이렇게 내버려두실까' 라는 의구심을 가진 소위 '반항아' 캐릭터다. 이러한 철호의 시각과 지하교회 교인들의 믿음이 더 크게, 극적으로 대비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문제는, 지하교회 사람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영화가 후반부에 너무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이다. 고문에 못이겨 외신들이 모인 집회 '쇼'에서 김정일을 위시한 거짓 증언을 한다던가, 철호를 못 믿으니 철호 돈을 훔쳐서라도 혼자 도망가려고 한다던가, 기독인의 정체성이 당의 위협에 묻힌다던가(젋은병사), 자살로 삶을 끝내버리는 장면들이 우리의(혹은 나의) '북한 지하교회 교인들' 의 이상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이럴 거면 차라리 초반에 숭고하게 죽어버린 영미나 찬양부르면서 당당하게 총살당하는 기독인들을 보여주지 말지.. 일관성이 있으려면 잠시 주춤했던 지하교인들이라도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로 재탄생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자들과 부대끼며 철호가 진정한 신앙에 눈뜨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췄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이런 방황하는 철호와의 대비가 영화가운데 있다. 처음에 죽은 아내 영미와의 대비다. 그런데 거의 영미 혼자 원톱으로 나온다. 계속 환영으로 나타나면서 철호와 대화도 하고 찬송도 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는 철호가 죽기 전 자신이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부분이다. 철호가 끝네 자신의 애씀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장면을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부분이 아쉬운 것은 철호가 어떻게 이렇게 변했는지 하는 힌트가 딱히 없었다는 것이다.



2. 기대와 다른데 반전은 없음

이 영화의 홍보 핵심문구는 '북한 지하교회' 였다. 나는 아래의 홍보 포스터 사진을 보고 정말 기대를 많이 했다. 신앙이 발각되는 즉시 처형되는 처참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손에 들린 촛불빛처럼, 또 밝게 웃는 얼굴빛처럼 숭고한 신앙을 가진 지하교회 성도들의 이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너무 현실대로 조명한 탓일까. 그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엔 뿔뿔히 흩어져 각개전투를 치루다가 김정일 정권앞에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릎을 꿇는 스토리라니.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건 다큐지 영화가 아니지 않는가. 물론 현실고발성이 있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면에선 박수쳐주고 싶다. 그럼에도, '영화'를 기대한 사람들에게 '다큐'는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지하교회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죽어갈 때에도 끝에 '한 방'이 있겠지 라는 생각을 계속 했었다.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데 주인공이 무엇이라도 하겠지, 이렇게 영화가 끝날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가 진짜 그렇게 끝났다. 북한 지하교회의 어떤 꿋꿋한 숭고함을 기대했지만 그런 면은 딱히 부각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반전' 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북한에서 예수님 믿다가 발각되어 몰살당했더라'는 이야기를 담담히 회상하는듯한 영화였다. 나름 포인트가 있었지만 표현력이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다. 이것이 다음 아쉬운 점이다.



3. 너무 정직한 전개

보통은 영화에서 긴장을 유발하는 어떤 장면을 대면할 경우 관람객은 아주 당연할 (가장 현실성 있는) A의 상황과 그래도 혹시 모를 B의 상황을 동시에 상상하며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긴장하며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적들의 추격을 가까스로 따돌렸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물통에 있는 물 한모금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뚜벅뚜벅하는 소리가 난다. 여기서 (현실성 있는) A의 상황은 그 소리가 따돌렸다고 생각했던 적의 것인 경우이다. 하지만 소위 '재미있는' 영화들은 여기서 반전을 일으킨다. 그 발자국 소리가 죽은 줄 알았던 동료(드라마)이거나, 꿈이었던 것이나(인셉션), 아니면 그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이 나였던가(식스센스) 하는 반전 전개들이 다큐와 영화의 차이점일 것이다.



신이 보낸 사람에서는 이러한 영화적 요소보다는 다큐요소들이 더 많았는데 그렇다고 완전 다큐도 아니었기에 불편했다. 한마디로 애매했다. 15세 관람가라고는 믿어지지않은 잔인한 고문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그 임팩트가 어찌 보면 가장 큰 '한 방'이고 그 충격을 이어나갈 스토리도, 전개도, 막판 한방도 없다. 그렇게 몰아가다가 그렇게 정직하게 끝나버렸다. 

이것은 마치 정신이 번쩍 들 매우 매콤한 맛있는 찌게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정작 요리에 들어간 것은 청냥고추 한다발인 느낌? 맛이 매콤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건 맞지만 진짜 이 '맛'을 기대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북한 지하교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해서 기대를 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정말 정직한 실상을 담아냈고 그것이 전부였다. 물론 정말 그 맛 자체는 맵고 정신이 번쩍 들긴 했다. 아마 그래서 영화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가슴이 그렇게 먹먹할 것이리.



4. 기독교를 앞세우지만 친절하지 않은 영화

아마 기독교영화가 아니었으면 그냥 가슴이 먹먹하고 말 영화였다. 북한 지하교회 교인들의 탈북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탈북 영화였다면 진정성있는 다큐영화라고 칭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회다니는 내가 보기에도 신앙에 초점이 맞추어진 돌직구 기독교영화인데, 보편적인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기에 이 영화가 친절하지 않았다는 점이 나를 속상하게 한 것 같다. 안그래도 한국 사회가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데 이 영화를 비기독인들이 보고 나서 좋은 평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좋게 보려고 노력하더라도 위에 언급한 신앙의 숭고성이나 신념이 충분히 부각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 후반부에 신앙적 요소들이 남발된 것은 거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부드러운 영화가 되진 않겠지만 불편한 영화가 되는 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5. 제목의 배신

보통 영화를 보고 나오며 영화제목을 다시 떠올려 볼 때 '아, 이래서 제목이 이거였구나' 하는데 이 영화는 도통 왜 제목을 '신이 보낸 사람'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의중이 있겠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 봐도 당장 깨달아지는 것이 없다면 제목선정의 실패라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배신을 당한 느낌이다. 제목이 '신이 보낸 사람' 이기에 무언가 신적인 요소가 가미된 사람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렇다 할 인물이 없다. 오히려 너무나도 무기력하게(인간적으로) 북한정권에 짓밟히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제목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영화 처음에 고문받다가 죽은 철호의 아내(영미)인것 같다. 중요한 인물이기에 계속 등장은 하지만 너무 영화 처음에 임팩트있게 죽여버려서 나중에 등장하더라도 전과 같지 않은 듯.



6. 연계성/설명이 부족해 보이는 설정들 (스포내용 多)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라 하더라도, 시간이 없어서 어쩔수가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이것보단 잘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장면들이 꽤 있었다. 전체적인 어떤 맥락때문에 그랬던 건지, 아니면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 아니었던 건지, 혹은 의도적으로 그랬던 건지. 모르겠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소설을 쓸 때 처음에는 소설가가 캐릭터를 중심으로 소설을 써 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캐릭터가 소설을 써 나가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지켜고면 된다고 한다. 이말은, 캐릭터 형성이 잘 되면 그 형성대로 캐릭터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때문에 캐릭터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각자의 캐릭터를 형성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본다. 이런 캐릭터인가, 저런 캐릭터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려고 할 때 죽어버리는 것이 함정이다. 이 레파토리가 주인공까지도 해당된다는 사실이 나는 참 허무했던 것 같다. 마치 고민만 하다가 이렇다 할 행동게시 기회도 못 얻고 죽는 느낌이다. 뭐 인생의 허무함과 무력감을 표현하려 했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7. 그러니까 감독님 의도가..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이 의도했던 점이 무엇인지를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영화 장면들을 하나씩 곱씹어 보면서 그 의미들을 되새겨 본다면 나름의 의미를 발견할수야 있겠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마땅히 찾을 수가 없었다. 초중반까지는 짜임새있게 전개되다가 후반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해야하나. 감독님이 너무 욕심을 부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주고픈 마음은 이해는 가지만 그 때문에 '영화'로서의 의미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총평: 개봉 몇 달 전부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보고 나서는 꼭 사람들에게 추천해 줘야지 하고 생각하던 영화라 상대적으로 실망이 컸던것 같다. 초반의 몰입도나 전개는 좋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주위인물들로 시선이 분산되면서 스토리가 조금 난해해진 것 같다. 그렇게 분산된 이야기를 철호의 마지막 고백으로 마무리 하는 구도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내 말처럼 북한의 실상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시도는 매우 좋은 것 같다. 같은 민족이지만 너무나도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 또 기독인들에 대한 영화가 앞으로 계속 나오고, 또 흥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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