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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규방>/영화와 책

2015.1.6 - 국제시장 후기





사실 너무 뻔한 스토리와 감동을 짜내려는 듯한 뉘앙스만 있는 것 같아보여 볼까말까 망설였던 영화였다. 


하지만 보기 정말 잘했다. 신파극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실이기에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이야기이기 전에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담았기에 더 의미가 다가오는 영화였다. 


6.25부터 시작해 이산가족찾기방송까지의 역사적 조명은 나와 같은 젊은세대에게 이 나라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후기는 이 영화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상황들을 먼저 한번 돌아보려고 한다. 오늘 다 못쓰면 차차 추가해야지 ㅋ



   영화에 나온 현대사


1. 6.25 전쟁, 그리고 흥남철수사건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이 남침을 시도함으로 발발했다. 전에 6.25가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놓고 젊은이들이 헷갈려 한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조크이길 바라는 바람이다. 어쨌든 이 6.25 전쟁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비극인 분단이 시작이 되었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이 생기게 되었다. 아주 옛날 일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불과 65년전 일이다. 할아버지 세대는 다 겪으셨고, 우리 부모님들도 어릴 적에 겪으셨던 일인 것이다.


이 국제시장의 배경을 인강으로 유명한 설민석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신 영상이 있어 가져왔다.


 


흥남철수사건은 6.25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인데,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려 내려가게 된다. 그 가운데 흥남에 미 제10군단이 고립되어 있었고, 맥아더장군은 10군단의 대대적인 철수 명령을 피난민들 20만명이 마지막 삶의 희망을 찾아 흥남 해안에 모이게 된다. 


유류공급을 위해 흥남에 정박한 약 7,600톤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 화물선이었던지라 60명 정원에 승조원들을 제외하면 남는 인원은 13명이었다. 하지만 당시 10군단 민사부 고문이었던 현봉학 박사가 피난민들을 절대로 놓고 갈 수 없다고 설득했고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눈에 보이는 사라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태워라' 라는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탄생한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군수물자 25만톤 최대한 많이 버리고 최대한 많은 피난민들을 태우게 되었다.

그 숫자가 무려 14,000명. 역사상 가장 많은 피난민을 태운 선박으로 기네스북에 등제되었다.





놀랍게도, 3일간의 혹독한 추위가운데의 항해동안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 부산항에 내렸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5명의 새 생명이 이 항해가운데 탄생했고, 이들을 Kimchi 1,2,3,4,5 라 미군이 불러 이른바 '김치파이브' 가 탄생한 것이다.


경남 거제시에 있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는 흥남철수작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slayer38/220217597688


이래저래 정보를 찾다보니, EBS 역사채널e 에서 이 흥남철수작전을 다루었기에 가져왔다.




휴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더 추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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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독광부간호사파견




3. 월남전파병/파견




4. 이산가족찾기




   영화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