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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규방>/영화와 책

2014.12.4 - 엑소더스 후기




와이프랑 평일 저녁에 시간을 내서 엑소더스를 IMAX 3D로 보고왔다. 

아이맥스로 보기로 한 건 잘 한듯! 스케일이 큰 장면들이 많이 나와 큰 화면으로 보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엑소더스를 인터스텔라보다 더 비싸게 주고 봤다는 사실이 슬프다. (엑소더스는 3D라서 더 비쌌음).


이 영화의 총평:


스케일과 영상미가 받쳐줌에도 불구하고 강조점이 없어 너저분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보며 머릿속에 계속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1998)가 생각났다.



이집트왕자에서는 선과 악의 극명한 대비, 받쳐주는 OST, 홍해가 갈라지는 하일라이트까지 기승전결이 확실한데 엑소더스는 그렇지 않다. 뭐랄까, 모세와 람세스의 인간극장을 보는 느낌이다. 10가지의 재앙도,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도, 그저 이들의 인생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와 그 바다 갈라지는거 장난 아니었어!' 가 아닌 '모세와 람세스, 둘 다 힘들었겠네' 라는 생각을 하게하는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독이 출애굽기를 너무 중립적(혹은 과학적?)으로 해석하려해서 그런 것 같다.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을 모두 만족시키고 싶었지만 결국엔 밍밍하게 되어버린 느낌.



엑소더스는 에어리언(1979)과 글래디에이터(2000)를 탄생시킨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명작을 만들 수 있는 저력이 되면서도 왜 엑소더스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는지 의아할 뿐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봤다.


그래, 이 영화는 철처히 중립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영화다.



재앙과 기적의 주체는? (신? 자연? 믿기나름?)


영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람세스가 히브리인들을 놔주지 않아 내려지는 재앙들이 신에게서 온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좀 삐딱하게 보자면 재앙의 주체인 '신'을 굳이 인정하기 싫어하는 의도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면 자신의 영화가 종교영화가 되는 것이 싫었는지).


먼저 소위 '자연현상' 류:

1. 피 재앙 - 악어가 사람을 물어죽여 피가 나일강을 적시는 설정 (도대체 몇 명을 죽였길래?;;).

2. 개구리 재앙, 파리 재앙, 독종 재앙 -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재앙으로 묘사되며 코믹하지만 친절하게 이 재앙들의 과학적 상관관계를 영화 안에서 설명해줌 (비꼬는 건지 숨겨진 메시지인지는 확실히 구분이 안감).

3. 메뚜기 재앙 - 메뚜기 개체수가 워낙 많아서 재앙격이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뒤에 일어나는 장면(람세스의 변한 모습의 강조)을 위한 포석이라는 느낌.


초자연적인 재앙들은 어떤가? 

1. 우박재앙  -  실제로 성경에 보면 불덩이가 섞인 재앙이며 이것은 이집트 왕자에서도 Let my people go OST와 함께 멋있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래 바로 이 장면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에서는 불은 삭제해버리고 우박만 남겨두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자연현상으로 희석해 버린 느낌이 강했다.


2. 흑암재앙 - 이건 출애굽기의 배경지식이 없으면 흑암재앙이 나왔다는 것도 모를듯? 표현은 멋있게 했지만 순식간에 지나감. (참고로 성경에서의 흑암재앙은 3일동안 지속된 꽤 길었던 재앙 중 하나였음)


3. 장자재앙 - 뭔가 스팩타클한 '죽음의 사자' 가 나올까 기대했지만 너무나도 실망스럽게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그냥 조용히 지나가버렸다. 뭔가 넣기 싫은 장면이었지만 꼭 넣어야하길래 어쩔 수 없이 넣은 듯한 느낌이다. 혹시 의도가 조용히 죽여버림으로 그 죽음을 더 강조한 것이었다면 그 의도는 실패한듯 하다. 아 진짜 이집트왕자를 보고 눈이 너무 높아졌나보다.





죽음의 천사면 이정도 포스는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리고 가장 실망한 홍해의 기적. 썰물때문에 홍해가 갈라졌다고 생각할만큼 홍해가 느리게 갈라진다. 아니, 갈라졌다기 보다는 물이 빠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자고 일어나니 '어? 물이 많이 빠졌네?' 정도의 설정이다. 아직 완전히 빠지지도 않았는데 나를 믿고 건너라는 설정에서는 홍해를 가른 주체, '신'을 찾을 수 없다. 



이런 걸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영화에서 이 모습을 CG로 구현했을거라는 기대감에 하악거렸는데..



그리고 이집트 군대를 막은 불기둥 구름기둥도 빠져버렸다. 뭔가 인정할 수 없다라고 여겨지는 부분들은 다 빼버린건가 (아니면 편집된건가?).



이거! 이거 보고 싶었던 말야!! ㅠㅠ



무서운 하나님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빼고는 얘기가 되지 않을테니 하나님이 영화에 등장하신다. 이집트왕자처럼, 십계처럼 음성이나 천둥번개가 아닌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온다. 하나님은 어떤 신비한 존재라는 틀을 깨려는 시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 주관적인 해석으론아직 철이 없는(?!) 하나님을 은유로 표현한듯 하다. 힘은 있지만 상식은 없는(자기 맘대로인) 그런 무섭고 철없는 하나님으로 비춰진 듯 하다. 흔히 성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구약의 하나님은 맘에 안들면 싹쓸어 버리는 하나님으로 인식하듯이 말이다.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대면할 때 성경과는 달리 땅속에 파묻혀 얼굴만 겨우 내밀고 대면하는 장면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자기 뜻대로 다 이루어버리는 무서운 하나님의 표현이 아니었다 싶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에서 더 명백히 들어난다.


모세가 하나님한테 너무 많은 무고한 이집트 사람들이 희생된다고 할 때 하나님의 대사는 '쟤네들이 더 잘못했어.' 식이다. 한마디로 내 백성을 400년동안이나 핍박했으니 이러한 대가는 마땅하는 식이다. 하나님이 모세와 가장 크게 대립한 부분에서는 심지어 하나님이 흥분하신다. '나보다 더 높아지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라는 식으로 모세를 윽박지르는 듯한 태도에서는 신의 위엄이 느껴지기 보단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어린아이로 보일 뿐이었다. 


뭐 감독이 그렇게 이해했나보다 했지만 이렇게 성경을 들춰내며까지 자신의 견해를 투영하는 것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중립적'으로 보면

성경을 '중립적'으로 본다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 성경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성경을 처음 접했을 사람들이 겪는 혼란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런 '중립적'인 관점을 위해 모세와 람세스를 그렇게 인간적으로 그린 것이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데

네가 편안히 잘 수 있는건 네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람세스가 자신의 아들에게 두 번이나 반복해서 하는 말이다. 정작 자신은 편하게 자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람세스 자신은 부친에게 온전한 사랑이나 인정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상처 때문에 람세스는 자신의 흉상과 왕궁을 더 빨리, 더 크게 지음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사정'을 이 영화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람세스에게 모세는 밤중에 갑자기 찾아와 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는 존재로 나온다 (무서운 하나님에 의해 떠밀려 온).



너에게만 들리는 하나님의 뜻

어린아이로 나오는 하나님은 모세에게만 보인다. 하나님과 모세가 대화하는 것을 여호수아가 숨어서 엿보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하지만 여호수와의 눈에는 모세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판단을 내리진 않지만 소위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중립적'인 시각을 표현한 것 같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는 하지만 어떤 객관적인 증거가 없기에 믿을수도, 거부할수도 없는 입장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는 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떄문이다. 그리고 그런 우기는 케이스가 영화에 나온다 (모세가 산으로 가자고 할 때).



왜 내가 그래야만 하는가

영화 초반의 모세는 예언이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러한 모세가 결국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변화에 딱히 불만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왜 내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무서워서라도) 일단 따라간다. 하나님을 따라가다보니 Moses(모세스) 에서 모쉐야(히브리 발음인듯?)로 정체성이 바뀌고, 뜻하지 않는 기적도 경험하고 결국엔 그렇게 나쁜 건 없는 것 같다는 것이 감독이 이해하는 출애굽기인 것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성경을 조망하려는 시도는 바꿔 말하면 한번 이해를 해 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구도자로서의 고민을 감독은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2012년의 동생 토니 스콧의 갑작스런 자살로 인해 이러한 고찰이 깊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끝난후 크레딧도 나오기 전 'To my brother Tony Scott' 이란 짧은 자막이 제일 먼저 뜨길래 와이프도 나도 이게 뭔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감독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