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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부부 이야기

♠부부 근황: next step이 정해지기까지(2018년 5월~6월 중순까지)

 Next Step 



지난 한 달간은 
북미정상회담(6/12)과 국회의원 선거등 
나라 차원으로 볼 때 중요한 일들이 치뤄졌고 
한반도에 큰 기류변화도 있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사이 우리 가정도 짧은 시간 안에
참 
많은 일들을 겪었고, 예상치 못한
큰 방향 전환도 하게 되는 시기를 보냈다.






♠ 남편(호규) 이야기 



남편이 10월 중순부터 미국 보스턴에 있는 HMS(Harvard Medical School,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포닥(postdoc,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최소 4~5년을 예상하고 떠나고 후에도 타국에 있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서 한국 귀국 시기는 미정인 상태로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다음 갈 행선지가 정해지기까지 사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짧은 시간 안에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8년 간의 대학원 기간 동안 실험실 생활이 성향상 잘 맞지 않아 힘들어했던 남편은 본래 졸업 후엔 과학 아닌 다른 길로 갈 법한 여지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졸업 막바지에 추후 진로를 놓고 같이 집중 기도를 하던 시기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호규야, 네가 이 길을 계속 갔으면 좋겠다.'는 강한 감동이 마음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게 될 곳이 어떤 곳인지까지도 막연히 두 가지 힌트까지 주셔서 아마도 대략 이런 지역이겠다는 추측을 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별로 소원한 적도 없었던 포닥행 준비를 뜬금없이(?) 시작하게 되었더랬다. 일반적으로는 본인이 postdoc자리를 직접 알아보고 여러 곳에 apply를 한다고하는데 남편은 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postdoc자리 (지원해보라는) 제안이 연달아 세 번 들어왔다. 그래서 더 확실한 인도하심인 줄로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세 군데 모두 떨어졌다. 설명하기엔 너무 길어져서 자세히 다 쓸 수 없지만, 흔치는 않은 상황들이었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만큼 바람도 빠졌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잘못 알아들은 건가 하는 혼란도 잠시 같이 왔다. 하지만 이내,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모른다 하며 '다른 길로 틀어도 된다는 사인인가?' 생각하고 여보는 국내 기업 취업으로 방향을 돌렸다.

포닥 지원 절차를 밟는 몇 개월 사이 주요 기업 공채들은 이미 다 끝나버렸고, 남아있는 곳은 딱 하나. S기업 뿐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적성과 잘 맞을 것 같은 직무가 열린 중소 제약회사 J기업도 있었다. 두 군데 모두 지원했다.  남편은 원래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J를  훨씬 더 가고 싶어했고 그곳도 남편을 뽑고 싶어했는데 J가 갑작스러운 중대한 회사 사정으로 인해 채용 계획 자체가 무산되게 되었다. (황당) 결국 S기업만 면접을 봤다. 서류와 기술면접을 통과하고(<-정말 열심히 준비하더라.) 임원면접만 남겨두고 있었는데, 남편도 나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자꾸 이곳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힘들었던 실험실 보다 이곳이 더 철장같을 거라는 느낌도 면접후기만 전해들어도 확 풍겨져 왔다. 그래도 보내시면 이유가 있겠지 순종하며 기대하며 나아가보자.. 하며 가기로 결정 내리던 차에..

그러던 와중 딱 그 때,  남편이 몇 달 전 postdoc 두번째 면접을 봤었던 곳인 H대학에서 뒤늦게 연락이 온 것. 그 사이 funding(연구비) grant(허가)를 기다리느라 연락을 주지 못했고, 이번에 충분히 확보되게 되어 한 명을 더 뽑을 수 있는 자리가 났다는 것. 연락이 너무 늦어져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지금이라도 들어올 의향이 있으면 받고 싶다는 연락.

사실 그 사이 
남편은 포닥에 대해서는  또다시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H대학에는 안 간다고 연락하고 당연히 S기업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려했다. (세번이나 줄줄이 떨어지면서 '역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야..' 하며, 기초과학을 계속 한다는 것에 대해 시무룩해지고 자신을 더 잃었던 것 같다.)  그런데, 거절 메일을 보내려던 찰나. 기도 한 번 안해보고 우리 선호와 판단대로만 너무 결정한다는 생각이 훅 들었다. 그래서 딱 이틀만 유보해두고,  같이 기도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셨는데,  과학의 길도, 기업가의 길도 모두 걸어보신 어른도 있었다. 실제적이고 애정어린 조언들을 받게 되면서, 기업이 아닌 해외포닥을 나가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던 마음들이 신기할 만큼 모두 해소(해결)되었다. 그래서 하루만에 방향을 완전히 turn해서  H대학 제안을 accept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


그리고선 곰곰이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니,  보스턴이라는 도시도, H대학도 우리가 다음 스텝을 두고 집중 기도하던 기간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던 hint 2가지와 정확하게 일치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 알아들은 건가' 싶은 시간을 지나며 몇개월간 돌아돌아 결국에는 이곳으로 가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심지어 당시 여보 대신 합격했던 다른 사람과 첫 출근도 거의 같은 시기에 하게 되었으니..
더더욱 '결국에는 갈 곳'에 돌아가게 된 셈.

'바로 보내셔도 될 것을 왜 이렇게 돌고 돌아 이것저것 겪고 가게 하시는 걸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던져졌다. 그리고선 금방 알게 되었다. '그곳에 가는 우리의 마음자세를 바꾸시고 또 믿음으로 무장시켜 보내려 하신 거였구나.' 하고.

만약 그렇게 초기에 단번에 바로 딱! 가게 되었다면, 그것이 감사하기보다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본인(남편)은 원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뜻이어서 타의에 의해 가게 된 길이라는 마음이 은연 중에 있었을 것이다. 그냥 또 꾸역꾸역 이겨내야만 하는 시간이구나 했을 지 모른다. 그런데 그 사이 다양한 곳들에 지원하고 맛보기 처럼 경험을 해보게 되면서, 본인의 소명을 재확인하게 되었고, 이제는 남편도 '스스로'도 가고 싶어서 이곳에 가게 되는.. 그런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또 보이지 않는 길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하심'만 믿음으로 붙잡으며 인도함 받는 법도 더욱 진하게 강도높게 배웠다.

그곳에서 어떤 일들을 보여주실 지, 어떤 일들을 하게 하실지..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 아내(세은) 이야기





그 사이 나에게도 상당한 방향 전환이 있었다. 남편이 next step을 준비하는 동안,  나에게도 총 3번의 괜찮은 일자리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 자리는 특히 상담사로서는 꿈꿀만한 최적의 자리였지만 남편과 어디론가 (해외로) 곧 이동할 것을 예상하던 상황이어서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나선 남편이 국내 기업을 갈 것처럼 방향turn을 하게 되자 (가려는 두 곳이 모두 비슷한 지역에 있어서) 나는 이사갈 집까지 알아봤었다. 어느 동네에 살지와 시세와 동선까지도 대략 파악해둔 상태. 국내 대학원 (박사과정)진학과 전액장학금까지 함께 알아보고 준비하고 있었고 일터(상담사 유급 1급 수련자리)도 알아봤었다. 그렇게 이제 최종 발표나고 이사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방향이 급turn되면서 나의 계획은 또 한 번 백지가 된 것.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또 한 번, '나의 우상(성취감)'이나 '나의 계획'의 저울 눈금을 0으로 맞추게 하신다. 

사람들은 '미국 간다'고만 이야기해도 대부분 부러워하는 반응을 보이는데 
부끄럽지만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미국에 짧게나마 살아본 경험이 있고 미국살이 하는 친구가 고국 아닌 곳에서 불안정함, 인종차별, 안전 문제 등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너무 가까이 접해서, 외국생활이란 게 그리 이상적이진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터. 더군다나 세계에서 가장 물가 비싼 지역으로 알려진 보스턴은 외식도 어려워 매일 매일 남표니 식사 챙겨주고 점심 도시락 싸줘야할테니, 이곳보다 내 내조가 더 중요해지겠구나 하는 부담감이 한가득 밀려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없어도 원하면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타국인의 신분으로 가는 그곳에서는 어쩐지 발목이 많이 묶일 것 같아 또다른 차원의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내 성향이 좀 그렇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일단 가면 너무 잘 적응하지만, 가기 전까지는 신경 많이 쓰고 앞서 긴장하는 편.)


하지만, 또 한 번 내 성향과 계획들을 내려놓는 이 과정들을 통해 나의 어떤 계산도, 판단도 아닌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시라는  이 고백에 진정성이 생겼고 순도가 높아졌음을 느낀다. 특히 요즘, '관계'라는 키워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하신다. 사람 간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이 둘의 공통점은 '신뢰'가 기반될 때 가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를 넘어서 이제는 가슴으로, 경험으로 알아간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형식이나 행위나 또는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닌 지금 이 순간 '하나님과의 신뢰관계' 그 자체라는 것 말이다.

나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능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여기서 한단계 더 믿음의 도약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상이었다. 하나님이라는 분을  '나를 억압하는 하나님' 상으로 은연 중에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하나님은 내 마음보다 하나님 마음대로만 항상 움직이실 텐데 뭐' '그러니 내가 무언가를 소원한들, 또 미리 계획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는 일종의 체념 같은 것. 그래서 기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 같은 것.

하지만 이런 내게 이 시간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은 이거다. 어느 부모가 자녀가 그리도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싶어하겠는가. 자녀의 소원함을 이루어주고 싶어하시고 자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실 게 분명하다. 그것이 부모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원하고 있는 무언가를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그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1) 그게 자녀에게 좋은 것이 아니거나. 2) 자녀가 그것을 적합하게 다룰만한(소화할 만한) 단계(때)가 아니거나.

하나님의 계획은 늘 나의 계획보다 촘촘하고 세심하고 완벽하다는 것을 이제는 믿는다. 하나님은 어줍짢은 내 얕은 판단보다, 모든 것 다 아시는 완전한 지혜로.. 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믿음을 가지게 되면서 나에게 보여주시고 기대하게 하시는 몇 가지도 생겼다. 여기 오픈하긴 어렵지만 내 마음 안에만 선명하게 담아두고 기대하는 중이다 :)





지인들한테 요즘 제일 많이 듣는 질문. 남편따라 가면 거기서 뭐할거냐고. 답은 [나도 모른다.]ㅋㅋㅋㅋ. 확실한 거 하나는 여봉이 아침점심저녁 세끼 챙겨주기. 특히 점심 도시락 매일 싸주기 미션!!!!!!! 
일단 거기 생활에 적응부터 하면서 열심히 도시락 싸주면서 뭐하면 좋을지도 기도해보려한다. 아이 주셔도 좋고 취직해도 좋고 공부해도 좋고. 뭐 아무 것도 안 하고 내조만 해도 상관없고!

대전에서 5년 반을 살며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내 자아상인 것 같다. 이전에는 
무언가를 더 성취해서 더 좋은 조건을 소유함으로 나의 가치를 upgrade 시켜야한다는 강박같은 게 있었다. 나 자신을 늘 부족한 존재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가치있고 소중한 (하나님께 용납받고 사랑받은)' 나를 가슴깊이 볼 줄 알게 되었다. 다른 누가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 새로운 피조물, 왕 같은 제사장,  그가 다스리는 거룩한 나라에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불러주시는데 이 사실 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채워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나의 의로, 행위와 성취로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방식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의, 그 분의 전적인 은혜로 살고 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살아가는 방식도 '내가 하고 싶은 걸을 내가 원하는 때에 하며 질주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감동(&소명)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이루어드리는(순종하는)' 삶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어쨌거나 미국행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부어주시는 것 같은 비전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기대하며 나아간다. 그 일들을 위한 구체적인 '필요'들도 섬세하게 채워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손에 있는 것들은 최소한으로 모두 비우고 떠나려 한다. 비워낸 손에만 하나님의 것들로 가득 채워주실 수 있으니까.



 @ 앞으로... 
※ 10월 첫주 출국전까지


■ 같이
고등부 여름 수련회
-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딸 둘다 떠나니 엄마가 많이 아쉬워하신다ㅜㅜ독일에 있는 동생네도 우리 보러 잠시 한국 들어오기로!)
- 지인들에게 인사(추리고 또 추려도 만날 사람들이 수두룩~)
싱가포르 여행(졸업기념 겸 포닥생활 시작 전 짧은 휴가& 여보 친구들에게 인사하러)
- 한국집 살림 처분& 출국 준비(역할 나눠서 같이)

■ 호규
미국 학회

■ 세은
- 7월 초 책 출간
- 일
본 단기선교
- 상담사 자격 갱신 등 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