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규방>/영화와 책

2011.12.11 - 레디칼 (Radical) 책을 반 읽고 써보는 글

사랑만이 2011. 12. 11. 03:29



내가 말씀에 대하여 얼마나 진지한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지만 바쁜 삶에 묻혀버리는 질문을 이 책은 다시 끄집어냈다. 복음. 당신은 이 복음에 대해 얼마나 진중하며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는가.

 

하나님의 은혜일 것이다. 내 안에는 항상 복음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매일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며 모범을 보이는 것이,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도 맞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죄의식까지는 아니었지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고 있다는 부담이 내 안에 있다. 이러한 나의 고민을 이 책을 기회로 간사들과 나누며 생각의 정리를 많이 했다. 처음 반 부분을 읽으며 고민하고 정립해 나갔던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균형. 균형의 반대말은 극단이다. 균형의 특징은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며 주위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이와 반대로 극단은 모든 것을 무시하고 질주하게 만든다. 주위의 변화는 하찮은 것이며 내가 추구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달리는 것이다.

 

나는 은연중에 극단으로 달리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선교사라는 집안의 배경 때문에 그런 것일까. 주의 복음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그것이 가장 큰 믿음의 가시화라는 그림이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이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잠자는 그리스도인들을 깨우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진정 잠자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으로 채워졌어야 할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해 나와는 반대편으로 달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속력으로. 우리 실험실을 예로 들자면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오직 실험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면 잠자는 그리스도인이다.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왜 나쁜 것일까? 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다. 전문성은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개발시키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실전에 있으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실험이라는 것이, 확장시키면 자신의 전문성이라는 것은, 그 안에 안주하고 싶게 만드는 성격을 가진 것 같다. 자신의 전문성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세상이 약속하는 밝은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안주하려는 순간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치열함에서 멀어지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론 안주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먼저 준비되어야 하나님이 나를 쓰실 수 있기에 이 부문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내면을 직시했을 때의 진심은:

내가 지금 집중해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있을 결과에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교회에 충성, 하나님에게 충성이란 말은 열정이 있는 한 때에 하는 말이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일단 내 삶을 챙겨야 한다. 하나님도 책임감 없는 충성은 싫어하실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무조건 교회에 충성한다고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복 주시는 것은 아니니. 하나님께서는 초월적으로 역사하기도 하시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력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는 자연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물론 솔직히 나 자신이 이러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결과가 나오지 않고 노력해도 되지가 않을 때, 사역에 쏟았을 시간을 여기에 투자했으면 잘했을 수도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느냐인 것 같다. 사영리의 첫 번째 원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간단한 원리를 믿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인생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그것을 하나씩 실행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신뢰하는가의 문제이다.

 

내가 했던 가장 큰 고민은 이것을 진정 신뢰하는 사람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교회의 가르침은 영성과 전문성의 두 양 날개를 펼치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목적인 건 맞다. 하지만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연구에 집중하자니 그쪽으로 안주해 버리려고 하고, 소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사역에 집중하자니 연구에 쏟을 시간이 없는 딜레마의 반복인 것이다. 학부 시절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말로 치열한 몸부림의 시간이었다. 양쪽 극단을 다 달려보았다. 균형을 맞추는데 잠시 성공한 적도 있었지만 사역과 전문성 양쪽 모두에 너무 욕심을 부린 나머지 건강을 잃고 말았다. 건강이 한번 꺾이고 나니, 이 것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임을 깨달았다.

 

내가 경험적으로 내린 결론은 어떠한 명확한 균형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욱 큰 깨달음은 균형은 분명이 존재하지만 그 균형점은 움직인다라는 사실이었다. 그 균형점을 찾는 열쇠가 바로 이 책이 강조하고 있는 성령충만이다. 성령의 음성을 따라 행할 때에야만 진정한 균형을 찾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하여 확신하게 됐다. 이 책은 성령께서 전문성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부르실 때에 느끼는 거부감을 정면으로 도전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 복음의 각성을 요구하는 이 책에서 나의 전문성을 부재를 더 느꼈다. 이 책을 가만히 보면 과감한 삶의 변화를 시도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탁월한 사람들이다. 이 책이 그들에게 그 전문성이 주는 안락함과 평탄함에 안주하고자 하는 욕구에 도전했다면 나에게 있어선 사역에 시간을 쏟기 때문에 연구에 쏟는 시간을 조금 희생한다는 합리화에 도전했다. 내가 정말로 깎아야 할 시간은 나만의 즐거움을 위한 시간이다. 웹툰을 본다던가, 인터넷 뉴스를 본다던가, 그냥 멍 때리고 있는 시간들, 그리고 우선순위에 있어 밀려야 하는데 충동적으로 감행하는 일들이야말로 내가 깎아야 할 시간들이다.

 

내년을 위해 40일 작정기도에 들어갔다. 이 기간만이라도 먼저 미디어 금식을 결단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선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나의 몸부림이다. 12월 한달동안 내가 어떻게 더 하나님께 나야가야 하는지 고민해 보려고 한다. 어떠한 명확한 결론이 아니라 순간순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더 경험하길 원한다.


-간사, 마을장 제자훈련을 받으며 써 본 글을 여기에 올려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