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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스크랩] 홈스쿨링 가정 인터뷰

사랑만이 2014. 12. 2. 15:27

출처: http://blog.naver.com/kohhh123/220141647073

학교 떠나 집으로 간 아이들…자유와 나태 사이 스스로 키를 잡다 

‘학교 갈 때 아이들은 걸어갑니다. 하지만 집에 올 때 아이들은 뛰어옵니다.' 예전에 등장했던 한 광고문구입니다.대다수의 아이들은 학교보다 집을 좋아합니다 .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오늘부터 학교에 가지 않아도 돼”라고 한다면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하루, 이틀은 좋아할지 몰라도 며칠후엔 울상을 지으며 학교에 가겠다고 스스로 나설지 모릅니다. 우리는 학교에 가는 것이 정상이고, 학교에 가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만 같은 생각을 가진 채 살고 있으니까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하는 홈스쿨링 가족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년 365일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홈스쿨러들은 무엇을 배우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현재 형태의 학교 제도가 도입된 것은 1800년대 후반이다. 근대사회가 되면서 국가 주도로 정형화된 초 · 중등 교육을 공교육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 . 초기 공립학교는 경제적으로 하위층 아이들이 가는 곳이었다. 부유한 집안 자녀는 대부분 집에 가정교사를 두거나 사립기숙학교에 갔다 .

 

홈스쿨러들은 이점에 주목한다. 그들은 홈스쿨링이 근대 학교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가정에서 이뤄지던 교육일 뿐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학교 제도가 가지는 부정적인 또래문화, 개인의 재능과 특성에 맞추지 않는 획일적이고 동일한 교육에 반기를 든다 . 자녀는 가정에서 개인의 특성과 가치를 존중받고 맞춤식으로 교육될 때 잠재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강대 교육학과 김재웅 교수는 저서.홈스쿨링정치학.에서홈스쿨링은 의무취학제도의 출현과 관계있는 일종의 사회운동이라고 정의했다.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을 지닌 사람(교사)에 의해 국가가 인정하는 장소(학교)에 가서 국가가 정해 주는 내용(국가 교육과정)을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사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있다는 말이다 .홈스쿨러는 공교육이라는 형태로 국가의 간섭이 가정의 가치와 신념에 관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동교육의 주도권이 학부모에게 있다고 믿는다 .

 

국토가 넓은 미국과 호주 등은 홈스쿨링이 보편화돼 있다. 학교를 오고 가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한 이유다. 홈스쿨링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홈스쿨링은 초창기에는 종교적 신념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의무취학제도가 자리잡으면서 정부의 강제 취학권과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이 충돌했다. 이후 수십 년 간 다양한 판례가 등장하면서 1953년 유타주에서 홈스쿨링이 합법이 된 이후 현재는 모든 주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현재 중학생 이하 자녀에게 홈스쿨링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교육기본법 제8조에서 초 ·중등교육 9년을 의무교육기간으로 정하고, 초 ·중등교육법 제68조 1항에 따라 학령기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홈스쿨링 중인 가정이 이 법에 따라 과태료를 낸 사례는 없다. 이러한 현상을 종합해 판단하면 우리나라 정부는 현실적으로 홈스쿨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국내 홈스쿨링 현황을 구체적으로 집계한 통계수치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공식적인 통계나, 체감으로 느끼는 국내 홈스쿨링 가정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6년 홈스쿨링 마치고 대학 입학한 김자원씨 가족

 

2007년, 14살 홈스쿨러였던 김자원(현 21세,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부 4)씨의 어느 하루다.

 

아침 9시,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푹 자고 일어난다. 거실로 나오면 엄마는 책을 읽고 아빠는 집 앞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다. 아침을 먹고 나면 그릇은 각자 설거지를 한다. 이후 남은 하루는 온전히 자유다 . 온 방을 어질러 놓으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책도 읽는다. 마당 벤치에 누워서도 읽고 텃밭 원두막에 앉아서도 읽는다. 실컷 책을 읽고 나면 이번엔 바느질을 한다. 눈이 아파진다 싶으면 한쪽 구석에 세워둔 기타를 연주해 본다 . 때로는 아빠를 도와 텃밭 일도 나선다.

 

뜨거운 태양 아래 오미자와 복분자를 돌보는 일이다. 땀을 흘려 일을 하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무엇보다 용돈이 생겨서 좋다. 저녁에는 좋아하는 영어 애니메이션을 3시간씩 연달아 보면서 들리는 대로 받아쓰기 해 본다. 아이는 일기를 쓴다.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자원씨는 초등학교 졸업 직후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탄탄한 직장을 가진 엘리트였지만 늘 서울을 떠나고 싶어했다. 아빠 김영수(54)씨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80학번, 엄마 고현희(50)씨는 숙명여대 독어독문학과 82학번이다. 담배인삼공사의 임원이었던 아빠와 10년째 학원을 운영하던 엄마는 각각 ‘회사 밖으로’와‘ 학교 밖으로’를 간절히 꿈꿨다. 결국 김씨가 10살이 되던 2001년 2억여 원을 투자해 강원도로 귀농했다. 인제 진동계곡에 자리를 잡고 복분자와 오미자를 키워 효소로 담아 택배로 팔았다. 처음 1년 반 동안은 자산을 까먹기만 했고 3년째가 돼서야 1년 소득 600만원을 얻었다. 그 사이 김씨와 동생 정환(19)씨는 진동계곡을 집 삼아 마음껏 뛰어놀았다.

 

10살부터 3년간 전교생 20명인 분교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자원씨는 6년간 홈스쿨링을 했다. 17세부터 입시공부를 시작한 그는 2년 뒤 치른 수학능력평가시험에서 언어·수리 ·외국어 영역 1등급을 획득해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부에 과 수석으로 입학했다. 아래는 자원씨와 일문일답.

 

  홈스쿨링은 왜 선택했나요.

“공부를 하려고요. 제게 있어 학교는 아이들과 노는 곳이었어요. 공부는 집에 와서 하는 것이었구요. 학교는너무시끄러워서 공부가안 되고,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들도 별로 없었거든요. 수업할 때도 너무 심심했어요. 학기 초에 교과서를 받으면 며칠 내로 다 읽어버려서 막상 수업시간에 배울 땐 흥미가 없었거든요. 내 시간표는 내가 짜서 마음껏 공부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아서 초등학교 졸업까지는 했어요. 또래문화도 스트레스였어요. 중학교에선 또래문화가 더 심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겐 학교보다는 집이 훨씬 더 건강한 공간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주위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저는 부모님께 ‘학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주입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엄마는 귀농 전에 참교육 학부모회 활동을 하시면서 대안교육과 홈스쿨링 쪽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힘들거나 네가 하고 싶으면 학교는 안 가도 된다’라고 하셨어요. 때문에 저도 홈스쿨링 또는 홈스쿨러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었습니다. 홈스쿨링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은 기뻐하셨어요. 졸업식 날 학교 선생님들께 많은 격려를 받았던 기억도 납니다. 학교를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보면 주입받는 것 같아요.

 

 학교를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이상하다는 건가요.

“몇 년 전 공중파 TV에서 문제학생이 많다는 학교를 다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중에 한 학생 어머니가 쓴 편지 중에 ‘제발 우리 아이 고등학교만은 꼭 졸업하게 해달라’고 절절하게 부탁하는 내용이 있었어요. 이 장면을 보면서 ‘고등학교 졸업장이 왜 그렇게도 필요한 것일까. 구구단도 모를 정도로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는 졸업장이 아니라 다른 분야 일을 배우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홈스쿨링으로 어떻게 공부를 했나요.

“처음에는 집에서 시간표를 짜고 진도를 맞춰 중학교 공부를 해나가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갈수록 처지고, 학습에 흥미를 잃었죠. 그래서 1년 뒤엔 하고 싶은 영어공부만 해보기로 했어요. 스스로 풀꽃대학 영문과 학생이라고 이름 짓고 영어 동화책을 번역하고, 영어 일기를 쓰고, 자막 없이 영어 애니메이션 보기, 영어책 읽기, 단어 익히기 등을 하고 4개월여 만에 스스로 졸업을 했습니다. 16세에는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했어요.”

 

― 홈스쿨링 기간 동안 규칙적으로 해 나간 활동은 뭔가요.

“몸 공부·가족활동·홈스쿨러 캠프 ·그룹 홈스쿨링 ·자기주도학습이 제 홈스쿨링을 구성한 5가지 영역이에요. 몸 공부는 설거지와 빨래 ·청소, 농사일 등 집에서 생기는 모든 일이에요. 몸 공부를 통해 공부가 절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일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자기 삶에서도 주체적인 태도를 갖게 돼요. 24시간 함께 하다보니 가족활동도 많았어요.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MBTI나 애니어그램 같은 성격유형도 찾아 공부 했어요. 아버지에게 인문학·한문을 배웠는데, 한문 문장을 익히면서 뜻을 탐구하고 토론해보곤 했어요. 매달 참가하는 홈스쿨러 캠프에서 또래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 제주도 자전거 여행 등 신나는 활동을 했고요. 그룹 홈스쿨링은 여러 명의 홈스쿨러가 함께 모여 공부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인데, 17세 이후 입시 공부를 시작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됐죠.

 

 ― 대학 입시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뭔가요.

“홈스쿨러 캠프를 해 오면서 끼가 많은 친구들과 비교하며 알게 모르게 열등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내 길은 무엇인가 치열하게고민했어요. 그러다 17세 겨울에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모두가 하니까 수능을 치고, 모두가 하니까 대학을 가는 것이 아니었어요. 사실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전까지 공부를 위한 공부를 했었다면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공부는 17살에 처음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수험생활이 대학에 와서 만난 친구들에 비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남과 비교하며 힘들어하기보다 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17세에 처음 시작한 입시 공부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험난했죠. 언수외가 뭔지도 몰랐고, sky대를 가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그런 이름의 대학교가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공부를 해가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기고 오히려 얼굴이 밝아졌던 것 같아요. 몰입의 즐거움을 알게 됐고, 때로 정말 힘들기도 했지만 스스로 뿌듯하니까 즐거웠습니다. 저는 수능 공부를 하면서 학원을 다녀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수험생 홈스쿨러 한명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각자자신에게 맞는 인강과 교재를 머리 싸매며 치열하게 골라 주문하면 부모님이 입금해주셨어요. 저는 수업을 듣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인터넷 강의는 최소한으로 듣고 문제집을 더 많이 풀었죠. 18살 때는 고졸 검시를 따고 시험삼아 수능을 한번 봤었고, 19살 때 본 시험을 치렀습니다. 

 

― 홈스쿨러가 경계해야 할 점도 있겠죠.

“홈뒹굴러, 잠옷스쿨러요. 홈스쿨링은 무궁무진한 기회를 자신이 잡아 키워나갈 가능성을 주죠. 하지만 동시에 나태함이라는 위험이 존재해요.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게 느껴지는데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때문에 무기력해지거나 정체되기 쉬워요. 부모님과 같이 고민하고 같이 찾아나가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본인이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언제, 왜 배울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주체성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한것 같아요. 나는 학교가 정해주는 것이 아닌, 내가 정하는 것을 배우려 하는 홈스쿨러라는 정체성이 있어야 나태함에 빠져도 다시금 힘을 낼 수 있을 테니까요.”

      글=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 .co.kr 사진 =장진영 기자, 우상조 인턴기자 artjang@joongang .co.kr

 

인터넷 강의로 공부하고 있는 김자원씨와 동생 정환군


아빠 김영수씨는 가족과 함께 귀농해 복분자·오미자 농사를 지었다

 

한문을 공부하며 토론 중인 김자원씨 가족

 

관련글: 홈스쿨링 인터뷰 하고 왔어요  http://blog.naver.com/kohhh123/220122396478